박만수 데이콤 네트워크 부문장(상무·51)은 우직하다. 대학에서 통신공학과를 졸업하고 75년 금성통신에 입사한 이래 30여년 동안 금성정보통신·LG정보통신·LG전자를 거치며 시스템 개발과 네트워크 운용에 매진해 왔다. 지금은 없어진 광화문 전화국의 아날로그 장비들도, 이후 전국에 깔린 SK텔레콤의 이동통신망이나 전국의 전자교환기(TDX)도 그의 손을 거쳤다. 심지어 베트남 50여개 성 중 40여개의 시내 전화망도 그가 직접 깔았다.
대학시절 7년여에 걸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개인사나 그때 이후 인연을 맺은 인천을 떠나지 않는 것에도 그의 우직함을 엿볼 수 있다.
2002년 가을, LG전자가 중국 CDMA시스템 2차 입찰에서 떨어진 직후 베이징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패장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1차 입찰에 떨어진 후 교체 투입된 그가 ‘1차에 떨어진 뒤 2차에 새로 진입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호소하고도 싶었겠지만 그러질 않았다. 그런 그에게 LG는 데이콤의 네트워크를 운용하고 나아가 LG텔레콤, 데이콤, 파워콤 3사의 네트워크를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 시너지를 만드는 일을 맡겼다. LG의 간판아래 하나로 묶여 있지만 뚜껑을 열고 들여다 보면 서로 다른 전략과 문화로 풀어내기 쉽지 않은 까다롭고도 중요한 일이다. 믿음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성급한 결론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아나로그 통신기술이 디지털로 전환되고 시스템중심의 통신장비 시장이 단말기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생겨난 급격한 변화는 철저히 차근차근 준비하는 사업자에게 결국 기회가 돌아온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LG 통신망도 IP시대가 도래하는 기술의 변화에 미리 대응하면 기회는 옵니다.” 미리 준비한다는 점에선 날렵한, 그러나 큰 방향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점에서 박 상무다운 대응책이다.
현장에 몰두해온 샐러리맨 엔지니어라 가정사엔 무관심할 듯한데 의외다. 그의 말대로 ‘지들이 의지를 갖고 바르게 잘 커준’ 세 딸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수시로 표현하는 따뜻한 가장이다. 연애결혼한 부인과 주말이면 인천 교외를 둘러본다. 과거 출장과 해외파견을 거듭해 실은 가정에 소홀했고, 아직도 집에 머물지 못하는 주말이 많지만 결코 호들갑으로 보상하려 하지 않는다.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조용하면서 강한’ 그의 스타일은 30년에 걸쳐 그룹 내 많은 신뢰를 얻어냈다.
LG정보통신부문 내 가장 고참으로 남아 여전히 중책을 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운이 좋았을 뿐이죠.” 우직한 그가 고작 내놓은 ‘비법’도 이렇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