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불쌍한 과학자는 ‘잊혀진 과학자(?).’
28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퇴임 정부출연연구기관 기관장들은 연구위원이나 초빙 연구원 자리라도 보장받고 근근이 버티거나 그야말로 갈 곳 없어 집이나 지키고 있는 ‘잊혀진 고경력자’, 무엇인가 스스로 찾아 일을 하고 있는 인물 등 다양하다.
이들 중에는 기관장 시절 관습적으로 행해지던 일로 인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중도하차한 인물도 있다. 하지만 해당 연구분야에서는 내로라하는 연구실적과 노하우가 있는 기관장들을 과학자 재활용 측면에서 보다 적극 이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
기관장을 맡을 정도로 한 때 잘나가던 이들 가운데에는 퇴임 후에도 당당히 하던 일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잘 안풀리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당히 내 일 한다’ 소신파=대부분의 전임 기관장들은 자신의 일을 찾으려 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전임 기관장인 장근호 박사는 기계연구원 내에 벤처기업을 차려 자동차 관련 토르크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고, 최동환 박사는 인하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지난 해 환갑을 지낸 표준과학연구원 은희준 박사는 퇴직 후 초빙연구원으로 다시 들어가 음향진동 전공에 몰두하고 있다. 연구실적은 없지만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등 선배 과학자가 당당히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KAIST 총장 출신 인물로는 최순달(전기전자),이주천(물리학과),전학제(화학과),이정오(기계),최덕인(물리) 박사 등이 칠순에 가깝거나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강의에 나서는 등 후학양성에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일하고는 싶지만…=한동안 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연임에 성공한 뒤 기관장협의회장까지 맡아 활동하던 손재익 박사는 요즘 교회와 집만을 오가며 소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 박사는 캐나다 오타와 대학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또 기계연구원장으로 연임에 성공했던 황해웅 박사는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인물이지만 연구원 내 조그만 사무실에서 그럭저럭 소일하고 있다. 황 박사는 기계연 30년사를 테마별로 정리하고 강연 등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싶어한다. 그러나 일부에서 연구위원 위촉을 반대, 머뭇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TRI에서 원장을 지냈던 정선종 박사는 미항공우주국(NASA) 출신의 항공, 우주분야 통신 전문가지만 정보통신대에서 1주일에 3시간 강의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이다.
출연연 관계자는 “전임 기관장들이 한 때는 시대를 풍미하던 대단한 인물들이었다”며 “화합의 자리라도 마련하고 뭔가 상응한 대우와 배려하려는 사회적인 풍토가 아쉽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