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썸

장윤현 감독은 확실히 새것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데뷔작 ‘접속’에서 현실 공간 이외의 삶의 새로운 영역으로 등장한 사이버 공간을 영화의 핵심 모티브로 차용했다. PC 통신 세대의 새로운 사랑법을 그러낸 ‘접속’은 삶의 토대가 변하면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구성되는 또 하나의 현실인 영화도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PC 통신세대가 막 등장했던 ‘접속’ 때와도 다르게, 빠른 속도로 정보화 혁명이 진행중인 ‘썸’에서는 변화하는 삶을 보여줄 또 다른 상징적 매체가 필요했을 것이다. ‘썸’에서 디카는, 내러티브의 중요한 연결고리로 등장한다.

교통방송 리포터 서유진은 언제나 디카를 갖고 다닌다. 그녀는 디카로 일기를 쓴다. 눈에 보이는 특별한 일들은 곧바로 그녀의 디카에 기록된다. 사라진 100억원대의 마약을 찾기 위해 수사를 하는 강남경찰서 마약반 강성주 형사와 서유진의 디카가 만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또 경찰의 반대편에 피어싱 조직이 있다. 그들은 종래의 한국 영화에서 경찰 집단의 상대 개념으로 등장하던 조폭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능숙하게 컴퓨터를 다루고 사이버 범죄에 익숙하다.

그들 조직원들이 온 몸에 구멍을 뚫고 장신구를 매다는 피어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피어싱에 대한 장윤현 감독의 접근은 매우 상투적이다. 피어싱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타인을 향해 공격적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향해 공격적이다.

그러나 만약 ‘썸’에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디카나 플래시 몹 등 새롭게 등장한 문화적 트렌드를 재빠르게 흡입한 순발력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경험하는 기시감, 데자뷔라고 알려진 그것 때문이다.

분명히 처음 간 장소이지만 언젠가 꼭 한 번 온 적이 있는 강렬한 느낌, 분명히 처음 본 사람이지만 언젠가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듯한 기시감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가 있다. 혹은 새롭게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이미 경험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24시간 뒤의 예고된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썸’은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시감, 데자뷔 현상을 영화의 중요한 테마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인간 존재의 숙명적 한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본질적인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썸’에서 기시감은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로만 활용된다. 거기까지다. 존재론에 대한 화두로 그것이 이어졌다면 영화가 주는 울림의 폭은 훨씬 더 확장됐을 것이다.

그러나 기시감이 영화의 새로운 소재는 아니다. ‘썸’의 포장은 화려하지만 들어있는 내용물은 매우 빈약하다. 사건도 상식적 수준에서 전개된다. 경찰 내부의 인적 구성은 매우 단순하다. 오 반장을 중심으로 이 형사와 추 형사가 강 형사 옆에 배치돼 있다. 오 반장은 마약 중독자고 이혼한 부인은 자식들을 데리고 미국에 가 있다.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추 형사에 비해 이 형사는 온화하고 조용하다.

경찰 내부의 적을 설정했지만 이야기는 복합적이지 못하다. 할리우드의 경찰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구도를 답습하고 있다. 비리의 주범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동료 중 한 사람이다. 경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마약 사건의 상투적 해결방식인 ‘내부의 적’이라는 공식이 사건 해결사로 등장한다.

강 형사와 서유진의 관계가 우리들에게 떨림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국어 교과서를 읽는 것 같은 주연 배우들의 설익은 연기 때문이다. 우리는 빈번하게 극 속으로의 몰입을 차단당한다. ‘피어싱’ 조직이나 강 형사의 동료 경찰 등 보조 캐릭터들의 설정도 상투적이다.

‘썸’의 힘 있는 극적 전개는 오직 호소력이 강한 소재의 후광 때문이다. 그것은 상투적 인간형에서 벗어난 개성적인 캐릭터들과 창의적인 극적 구조가 뒷받침 됐을 때 유효기간이 길다. 그러나 ‘썸’의 재미는 극장 안에 있는 그 순간뿐이다. 그러니 어쩌랴. 기시감에 잠깐 사로잡힌 우리가 극장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그것에서 쉽게 벗어나 버리는 것을.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