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게임의 아버지?

만화는 ‘게임의 아버지’다. 인기 만화치고, 게임으로 나오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원소멀티유즈’라는 전문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잘 만든 만화만큼 좋은 게임 소재도 없다. 캐릭터며, 줄거리며 그냥 가져다 쓰면 된다.

하지만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것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게임 자체에 대한 평가에 앞서 언제나 원작과 비교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된 ‘베르세르크’ ‘근육맨 제네레이션’ ‘신세기 에반게이온’ ‘하지메의 일보2’ 등도 마찬가지다. 만화를 이미 읽어 본 사람들은 항상 원작의 느낌을 따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만화와 게임을 비교해가다 보면 똑같은 텍스트(내용)도 담는 용기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진다는 것. 최근 출시된 게임들은 현재 만화와 게임이 어떻게 교감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각각의 텍스트를 분석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만화의 감동 그대로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에는 첫번째 원칙이 있다. 원작의 느낌을 얼마나 잘 살리는냐 하는 것이다. 아무리 멋진 그래픽과 타격감, 작품성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원작의 느낌과 전혀 다르다면 그것은 새로운 작품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많은 게임이 이 원칙을 지키려고 하지만 십중팔구 어긋나기 마련이다. 미디어 속성상 만화는 다소 정적인 반면 게임은 액션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최근 플레이스테이션(PS)2용으로 출시된 ‘베르세르크’는 이런 면에서 원작의 느낌을 꽤 잘 살린 편에 속한다. 만화 22권 이후 그리피스가 부활한 시점을 배경으로 제작된 이 게임의 경우 배경은 물론 캐릭터가 원작을 빼다 밖은 듯한 인상을 풍긴다.

특히 그리피스를 만나 극도의 분노로 포효하는 가츠의 모습은 원작의 팬이라면 전율을 느낄 정도다. 조드와의 조우나 해골기사의 등장 등 원작의 팬들에게 인상 깊은 장면들이 게임내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무엇보다 주인공 가츠가 자신의 키만한 대검을 들고 휘두르는 묵직한 타격감은 원작의 강렬한 전투를 떠올리게 한다.

굳이 원작과 다른점을 찾아라면 보기에도 거북스러운 괴물들과 선혈이 낭자한 원작의 어두운 분위기가 컬러풀한 3D 화면으로 좀 더 밝아졌다는 점이다.

이처럼 원작의 느낌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드리캐스트용으로 출시된 전작이 원작보다 못해 너무 비판을 받았기 때문.

그러나 원작과 너무 빼닮은 것도 게임으로서는 치명적이다. 만화를 알지 못하는 유저들에게는 감정 전달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편의 만화 스토리를 게임화하면서 생략된 부분이 많은 것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 어슬픈 원작 베끼기

‘베르세르크’가 원작의 느낌을 90% 이상 살렸다면 ‘하지메의 일보’는 만화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작품이다. ‘더 파이팅’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연재된 ‘하지메의 일보’는 주인공 일보가 숱한 역경을 이겨내며 강인한 복서로 성장해가는 드라마틱한 삶을 그리고 있다. 복싱경기 세컨드로 나갈 정도로 복싱을 사랑하는 작가 조지 모리카의 복싱에 대한 열정 때문에 리얼리티가 강조된 복싱 만화로도 유명하다.

게임으로 탄생한 ‘하지메의 일보’도 여느 복싱게임과 달리 리얼리티를 살린 것은 원작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호쾌한 맛에 대전 액션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하지메의 일보’는 어색하고 답답한 게임이다.

그러나 원작을 가장 잘 살려야 할 그래픽에서 게임은 만화의 느낌을 쫓아가지 못한다. 만화속 2D 캐릭터가 3D로 살아나면서 웬지 다른 캐릭터라는 인상을 풍기기 때문이다. 복서는 3D인 반면 경기장의 관중은 2D로 표현되는가 하면 ‘제2의 선수’로 불리는 세컨드마저 생략되면서 이처럼 어색한 분위기는 좀처럼 만회가 안된다는 평가다.

‘더파이팅’을 감동적으로 읽었던 유저들이 특히 실망하는 것은 ‘코크 스크류’ ‘뎀프시롤’ 같은 만화속 기술이 게임속에 구현돼 있지만 조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만화의 감동이 ‘그림의 떡’처럼 느껴지는 게임이 ‘하지메의 일보’다.

# ‘제3의 길’을 걸은 게임

만화 원작과 단순한 비교를 거부하는 게임도 있다.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2’가 대표적이다. 이 게임은 만화속 주인공과 설정이 그대로 이지만 유저가 어떻게 플레이 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엔딩을 맛볼 수 있다. 원작과 달리 제3 사도 사키엘을 마음만 먹으면 없앨 수도 있다.

무엇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못다한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어찌보면 만화의 후속작이 게임으로 탄생한 셈이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안노 히데아키 감독과 스텝들의 검수를 받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만화와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비밀과 의문이 게임을 통해 하나 둘씩 밝혀진다. 만화에서 볼 수 없었던 행복한 결말도 만화와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2’가 만화의 후속작의 성격이었다면 인기 만화 ‘근육맨’을 원작으로 한 ‘근육맨 제너레이션’은 만화 탄생 25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일종의 특별판이다.

국내에서 ‘근육맨 2세’라는 TV 애니메이션으로 소개된 ‘근육맨’은 80년대 일본 ‘소년챔프’에 연재되며 청소년을 사로 잡아던 격투 액션 만화다. 게임으로 태어난 ‘근육맨 제너레이션’은 ‘근육맨’에 등장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레슬링 대회를 소재로 하고 있다.

만화 탄생 25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니 만큼 만화속 48명의 초인들이 모두 나오고 근육맨 2세와 전설의 파이터들도 등장한다. 80년대 근육맨 캐릭터 상품으로 가장 인기를 모았던 ‘근육맨 지우개’도 게임속에서 만날 수 있다. 게임에서 얻은 ‘금메달’로 갸샤폰 기계에 넣으면 470여종의 지우개를 랜덤하게 뽑을 수 있다. ‘근육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470종의 지우개를 모두 모우는 재미가 게임보다 더 흥미진진하다고 말할 정도다.게임의 높은 인기 때문에 게임이 도리어 ‘만화의 아버지’가 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메이플스토리’를 소재로 한 만화 ‘코믹 메이플스토리’가 대표적인 사례. 발매 한달만에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등에서 전체 판매순위 3위를 기록했던 이 만화책은 100만부 가량 팔려나가 당당하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온라인게임 ‘겟앰프드’도 만화로 나와 초판 1만부가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또 3D 카툰렌더링 온라인게임 ‘씰온라인’은 일본 인기 월간만화잡지 ‘드래곤 에이지’에 연재 만화로 게재되고 있으며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게임속 에피소드를 만화로 재구성한 ‘리니지 에피소드 제로’도 출간됐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는 게임이 뜨면서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만들어져 일본 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장지영기자 장지영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