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보기술분야 산학관연 전문가 모임인 정보통신미래모임(회장 정태명)은 지난달 30일 오후 5시, 중국 다롄의 샹그릴라호텔에서 ‘IT세계화 전략’이란 주제로 10월 정례 세미나를 개최했다. 산·학·연 관계자 30여명이 참석한 이날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빠른 기술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문화적인 사고의 전환도 시급한 상황”이라며 “IT 리더십을 지켜내고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회·문화적 경쟁력에 대한 재평가하고 경쟁력에 대한 재인식 과정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정태명(미래모임 회장)=얼마 전 우리는 수출 2000억달러라는 경제적인 성과를 거둬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2000억달러 돌파라는 희망찬 뉴스마저 산적한 난제로 빛을 바랜 느낌이 없지 않다. 경제 도약을 위해 최전선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IT전문가들의 땀방울이 경제발전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더욱 매진해 주기를 바라며 우리 IT기업들과 정부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할 지에 대해 기탄없는 의견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
◇최해철(퓨처시스템 부사장)=해외의 대기업과 국내 벤처기업에서 일하면서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을 비교하게 됐다. 주 5일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사고와 개념, 생활패턴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인 논리로 시행됐을 때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업자들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중의 각론 단계에서 발생할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정책을 입안할 때 큰 덩어리만 추구하지 말고 각론을 촘촘히 그려줬으면 한다. 적정 이윤보장 없는 최저가 입찰 낙찰제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는 중국산 제품만을 생산하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조위덕(유비쿼터스 컴퓨팅사업단장)=사회적 현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은 밑에서 위까지 세밀한 시스템을 갖추고 가야하는데 세부 계획을 논하면 잔소리나 통이 좁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회·문화적 성향은 개선돼야 한다. 현재 유비쿼터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제일 어려운 것이 표현기술이다. 유비쿼터스는 시나리오가 매우 중요한데 상세 구현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시나리오 제작이 매우 어렵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큰 정책이나 주제를 만드는 것보다 복잡한 세부 계획을 만드는 방안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
◇민병준(인천대 교수)=해방 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뭔가 과시적인 것을 보여줘야 평가받는 것처럼 사회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 사람들을 보면 일할 때 답답할 정도로 문서화작업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 설계에서 구현, 발생 가능한 문제점이나 배경 등을 문서만 보고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사전에 작업을 다해 놓는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에 더 치중하는 면이 많다. 학교에서 평가를 할 때도 대부분 구현에만 주안점을 두고 가중치를 준다. 요구사항이 무엇이며 제품 설계시 얼마나 고민한 흔적이 있는지 등 요소는 점수를 덜 받는다. 프로젝트의 세부 밑그림을 잘 만드는 사람을 더 평가해주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박진식(KT정보화신도시사업협력단 정보화컨설팅국장)=앞서 논의된 초고속인터넷 관련 화두는 사업자로서 고민 많이 했던 사안들이다. 초고속 인터넷을 단기간내에 깔았다는 것은 우리의 자랑이지만 위기다. 빨리는 했지만 해결해야할 일들 역시 많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도 10∼20년짜리 프로젝트를 고려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는 1∼2년만에 도시계획을 마무리하고 불과 몇 년이면 사업을 끝마치지만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10년을 넘기고도 계속 숙고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이 우리보다 능력없어서 혹은 시스템적으로 안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려는 문화적인 차이라고 본다. 이제는 우리의 역량을 한 분야에 집중하고, 주도적인 사업자와 관련기업들이 유기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할 시점이라고 본다.
◇오병기(넥서스 대표)=흔히들 한국사람들 생활력, 경쟁력 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미국에서 공부해본 경험에 비춰 외국 사람들 역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정책입안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세계적인 현실을 잘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은 외국에서 사업하기가 참 힘들다. 모국의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에 수출만 하라는 말은 무리가 있다. 발이 땅에 닿고 있어야 경쟁을 하지 한국이 불안한데 영업하기 수월하겠는가. 한국이 어려우면 외국에서 기업하는 사람들과 해외진출도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아주었으면 한다.
◇김종빈(DSRI 대표)=전략의 부재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 컨설팅을 하면서 영업전략을 물어보면 없다는 대답이 거의 대부분이다. 심지어 경쟁사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사업의 진로와 미래에 대한 명확한 전략없이는 세계화는 요원하다.
◇김홍선(시큐어소프트 대표)=글로벌 경쟁에서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문제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본다. 그 사람들 5일 내에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정말 처절하게 일한다. 우리는 휴식·레저가 강조된 측면이 없지 않고, 일단 경제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문화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쉽다. 전략적으로는 현장경험을 우선적으로 살려야 한다고 본다. 한국에서 일본의 사업계획을 짠다는 것은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이상현(트루게이트 대표)=태국은 정보통신 강국인 한국을 벤치마크하고 있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기업에는 유리한 점이 많다. 우리보다 정보화 수준에서 떨어진 나라들은 그런 부문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있다. 일부 세계적인 수준의 분야 때문에 우리가 몇 년 동안 자만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잘못된 점을 개선하면 분명히 우리의 정보통신의 미래는 밝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김병초(외대 경영정보학과 교수)=중국에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외국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소통이 안되면 호텔 밖에 나가기 조차 싫어진다. 경제대국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중국어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시급하다. 세계화 전략에서는 중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온라인 게임처럼 우리가 잘하는 것을 특화해서 집중적으로 힘을 실어 주는 방법이 요구된다.
◇김규동(핸디소프트 사장)=마이크로소프트의 영업이익률은 40%가 넘는다. 이는 소프트웨어가 가진 고부가가치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국익을 위해 소프트웨어 산업은 반드시 성장시켜야 하는데 성공모델을 여자골프의 박세리에서 찾을 수 있다. 아무 기대도 안 했는데 갑자기 LPGA에서 우승함으로써 골프 불모지인 대한민국을 5년 만에 골프 강국으로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개인적인 역량에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경험과 힘을 가진 삼성의 뒷받침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도 이런 사례를 귀감으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한다.
정리=이규태기자@전자신문, ktlee@
*주제발표: IT 세계화 전략 방안과 문제점:변재일 열린우리당 의원
최근 한·일의원연맹 회의건 등으로 일본을 두어 차례 방문, 현지 의원 및 경제단체장들과 의견을 교류하고 돌아왔다.
일본을 방문하면서 소위 보통국가론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정과 관심이 참 대단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은 패전 후 국방력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권한을 제한받아 왔는데 주지하다시피 이를 다시 회복하자는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자위대와 신사참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의 변화는 한국과 중국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당히 패권주의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을 위한 10년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자신감은 한국을 보는 시선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 성장에 힘입어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에 대한 재인식으로 한국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꿨다. 2200만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조그만 땅덩어리에 정치·경제적 관심을 가질 국가는 한국과 중국, 일본 뿐이다. 북한을 중국의 경제권역에 포함시키는 것은 간단하며 북한 역시 체제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졌다. 현재 북한은 경제 회복을 위해 소비재의 유통구조 개선이 필요한 시점인데 중국이 이 유통시장의 구조를 석권하려는 노력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통일마저 쉽지 않은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런 입지가 모호해진 상황에서 우리는 어려워진 국제적인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전략을 갖춰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정치적 이슈말고도 기술부문에서도 상황은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과학기술중심 사회라고는 하지만 선진 기술을 갖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과의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반면 중국과의 차이는 좁아지고 있다.
물론 정보화에 앞섰다는 과신에 찬 나머지 우리만 뛰는 것처럼 과장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항상 주변국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한 통신회사의 외자유치 과정에서 중국 관계자를 만나면서 깜짝 놀란 경험을 했다. 그 관계자가 한국의 통신기업을 사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 중국이 한국 IT기업을 인수하겠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중국의 경제력은 이제 한국기업의 인수를 통해 동남아 시장 투자까지 고려할 정도로 까지 성장했다.
세계 최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어떤 점에서 비교우위를 갖고 있느냐에 대한 질문은 많지만 인터넷에서 우리가 갖춘 경쟁력은 가입자망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많은 투자를 유발하고 구축이 힘든 것이 가입자 구간인데 우리는 제일 어려운 부문을 잘 구축해놓고도 제대로 쓰지를 못하고 있다. 가진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는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근절돼야할 우리의 과제다. 활용대책도 세우지 못하면서 100Mbps급의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초고속인터넷이 뜨면 관련 산업이 뜬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이 구축되면서 국산화가 제대로 진척된 것이 어떤 분야일까. 인터넷 관련상품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던 디지털카메라의 국산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류는 일본 제품이다. 모뎀은 더더욱 심각한 사례인데 잘 만들다가 중국에 생산시설·기술이전 다 시켜주고 실속을 얻지는 못했다. 일일이 언급할 수 없지만 이같은 사례는 너무나 많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망구축 단계에서 이용자, 수용자, 공급자 측면에서 같이 전략과 계획이 이루어져야지 기술로서만 과시하면 아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제도적·법적 장치의 보완 역시 고려해야 할 점이다. 기술로는 한국이 위성 DMB에서 가장 앞섰지만 이로 인해 결국은 일본에 선두자리를 내준 경험도 한 바 있다.
국제 정세와 경제적 환경은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변화는 기술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고나 의식의 변화가 선행돼야 사회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는 기술의 변화는 엄청나지만 사고의 변화는 더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한마디로 우리의 상황은 어렵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외면해서는 안되며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