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프로젝트 잦은 변경, 계약서 무용지물

“수주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과업이 변경되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수시로 과업을 변경하면서도 시스템 납기일을 맞추라고 하니 프로젝트를 제대로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삼성SDS의 프로젝트 매니저) “본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발주처 요구 사항이 불명확하니 내용이 수시로 바뀌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LG CNS 프로젝트 매니저)

 시스템통합(SI) 분야에서 개선돼야 할 대표적인 악습으로 꼽히고 있는 ‘과업 변경’ 문제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과업 변경은 말 그대로 프로젝트 계약 이후 업무 분석과 설계 단계에서 발주처가 입찰제안요청서(RFP)에 제시한 내용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삼성SDS는 올해 전체 수주한 공공 프로젝트 중 60∼70%가 과업 내용이 조정된 것으로 파악했다. 평균적으로 계약 내용의 25% 정도가 추가로 수정됐다는 판단이다.

 LG CNS 역시 비슷하다. 올해 수주 프로젝트 중 과업 변경 프로젝트 비율은 무려 70%, 프로젝트당 평균 20∼30%의 내용이 변경됐다.

 현대정보기술·대우정보시스템·포스데이타·KCC정보통신 등 중견·중소 SI업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SI업체의 한 관계자는 “공공 프로젝트 수주 이후 과업 변경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변경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며 “계약 이후 분석 과정이나 설계 단계를 지나 심지어 구현 단계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업체들이 밝히는 과업 변경 사례는 범위를 늘리거나 요구 사항을 자주 바꾸는 것으로 요약된다. 범위 증가의 경우 애초 구상한 시스템 규모보다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요구 사항이 불명확해 혼란을 겪거나 요구가 자꾸 바뀌는 경우는 전적으로 발주처 책임이라는 주장이다.

 과업 변경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업의 수익성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젝트의 부실화를 초래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한다.

 컨설팅업체의 관계자는 “잦은 과업 변경은 납기 지연으로 이어지고, 기업에는 프로젝트 비용을 증가시킨다. 결국 이를 만회하려는 기업의 이윤 논리와 결합할 경우 프로젝트의 질이 저하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같은 악순환은 결국 프로젝트에 대한 충분한 사전 테스트를 불가능하게 하고, 시스템 구현 및 운용 단계에서 결함이 발견되고 난 뒤 문제 해결에 나섬으로써 더 큰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고 과업 변경의 폐혜를 역설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이에 대한 책임이 모두 공급업체에 전가된다는 점이다. 일부 수요처에서는 과업 변경의 1차 책임을 인정해 납기일을 연장해 주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게 업체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삼성SDS의 프로젝트 관리자는 “비용 부담은 협상 결과에 따라 고객 측이 일부 부담하기도 하지만 이런 사례는 흔한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LG CNS의 프로젝트 매니저도 “과업 변경 후 유상으로 보상이 된 경우는 10% 정도로 파악되는데 이는 타기관과의 시스템 연계에 있어 문제가 생기거나 기타 기술환경의 변화 등 책임 소재가 3자한테 있는 경우에 국한된다”고 밝혔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올해 상반기 대·중소기업 500개사와 200개 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과업내용 변경의 대가인정 관련 설문’은 이 문제의 대안을 제시해준다. 이 설문에서 대기업 응답자의 97%, 중소기업 응답자의 96%가 과업내용 변경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응답했다. 또 행정기관 응답자의 82%, 기타기관 응답자의 73%가 과업내용 변경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KCC정보통신의 이성화 이사(사업지원 담당)는 “공공 기관의 요구로 업무범위가 수시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발주기관이 이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주기관이 합리적인 보상 체계를 마련하고 실천하도록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혜선·김원배기자@전자신문, shinhs·adolf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