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IT특허전쟁` 비화 조짐

후지쯔가 올해 초 삼성SDI에 대해 PDP 특허 분쟁을 제기한 데 이어 일본 1위의 가전업체인 마쓰시타가 LG전자에 대해서도 거의 비슷한 형태의 특허 소송을 제기, 또 다시 특허 전쟁이 불붙고 있다. 이러한 특허 전쟁 이면에는 그동안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었던 일본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특허를 무기로 다시 예전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노림수가 포함돼 있다. 앞으로도 특허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특허 제소 배경=올들어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큰 사건이 여러건 발생했다. 파이오니어가 NEC의 PDP 모듈 사업을 인수한데 이어 히타치·도시바·마쓰시타 등 3개사가 차세대 LCD 합작법인(PS알파테크놀로지)을 설립했다. 도시바·캐논 등은 SED 합작사 설립을 발표했다.

 그러나 NEC와 파이오니어의 PDP 모듈 부분의 합병이나 PS 알파테크놀리지의 탄생 등은 시장논리로는 국내 업체에게 큰 위협 요소는 아니다. 파이오니어와 NEC 양사를 합친 PDP 모듈 점유율은 지난 3분기 기준으로 12.8%로, 삼성SDI 24.1%, LG전자 23.7%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오는 2006년에 가동예정인 PS알파테크놀로지의 LCD 생산 능력도 원판 기준, 6세대 1∼2 만장에 불과하다. 그 무렵에 두개의 7세대 라인을 가동하는 삼성전자나 6세대, 7세대 라인을 각각 가동하는 LG필립스LCD 생산능력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처럼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지 못하면서도 일본 기업들이 올해 들어 디스플레이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은 특허라는 무기를 이용해 국내 업체를 견제할 경우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를 무기로 국내 업체들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최근의 공급 과잉을 틈타 일본 전자업체들에는 일본산 부품을 사줄 것을 요청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삼성전자와 소니의 LCD 부문 합작을 계기로 일본 전자업계와 정부가 국수주의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최근의 여러 사건은 시장 논리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공격만이 최선의 수비=최근 제조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일본기업들은 특허공세로 국내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청색 LED개발업체인 니치아가 국내 기업들에게 특허 침해 가능성이 있다며 경고문을 보냈다. TEL은 국내 기업과 소송을 진행중이다. 반도체장비 업체인 일본 MJC는 국내 S사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으나 기각 됐으며, D사에는 경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삼성SDI와 특허 분쟁을 벌였던 후지쯔는 현재 LG전자와 특허 협상을 벌이고 있다. 후나이전기는 대우일렉트로닉스의 VCR 제품에 대해 수입금지를 지난 9월 요청한 상태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의 특허공세가 점차 거세지면서 국내 기업들도 이제는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무기가 될 수 있는 특허 기술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선진 기업들을 압박하는 전략도 펼칠만 하다”며 “물론 이를 위해서는 특허 인력 양성도 전제조건”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LG전자의 경우 PC의 통신 방식인 PCI버스 특허를 기반으로 전세계 PC업체를 대상으로 특허 협상 및 소송을 펼치고 있으며 LG필립스LCD도 사이드마운틴 등 자체 보유 특허를 바탕으로 대만 및 미국 기업들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이참에 일본의 관세 정률법을 WTO에 제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세관의 특허침해 여부 판단에 따라 통관을 보유하는 현행 일본의 관세 정률법은 WTO에 위배된다”며 “LG전자가 산자부와 상의해 이러한 항의서한을 일본 경제산업성에 보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형준기자@전자신문,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