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1일, 어바인의 팬택앤큐리텔 미국 현지법인(P&C 커뮤니케이션스) 사무실 앞에 미국인 20여명이 줄지어 서 있다. 입사 지원자들이다. 이들을 인터뷰하려고 송문섭 사장이 한국에서 급히 왔다. 송 사장은 마케팅, A/S, 물류, 인사 분야에 필요한 120명∼200명의 현지 인력을 직접 선발할 생각이다.
팬택앤큐리텔은 올 연말까지 미국 법인을 사이프레스로 옮기고 회사명도 팬택와이어리스(Pantech Wireless)로 바꾸기로 했다. 내년 4월까지는 뉴저지, 캔자스, 애틀랜타, 토론토, 시에틀 등 5개 대도시에 사무실을 열고 버라이존, 스프린트, 싱귤러, T-모바일 등 CDMA 및 GSM 서비스 사업자를 대상으로 영업과 A/S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송 사장은 한 달에 절반을 미국 현지 법인에 머물며 회사의 대대적인 확장 작업을 진두지휘한다.
북미나 중남미 현지 조립공장 설립도 고려 중이다. 북미 본부는 남미까지 커버하는 주요 전략기지로 삼을 참이다. 팬택앤큐리텔은 미국에서 생소한 신규 브랜드인 만큼 새로 역사를 쓴다는 각오로 임했다.
송문섭 사장은 “미국은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입니다. 중국 시장은 예측이 쉽지 않지만 미국 소비자는 취향도 까다롭고 합리적으로 구매합니다. 세계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가장 큽니다. 미국 시장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자 기회라고 확신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시장에 승부를 던진 것은 북미 시장이 저가 중심에서 고가·고기능의 컨버전스폰 중심으로 옮겨가 국내 휴대폰 업계의 전략시장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은 휴대폰에 MP3, 카메라, 캠코더 등을 내장한 고기능폰의 주요 수요처로 북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전략 수립에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 시장은 2세대를 지나 3세대를 막 시작한 형편. 그러나 3세대에 이어 4세대 휴대폰 시장에선 세계 휴대폰 업체들의 격전장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다음날, 어바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인 샌디에이고 LG전자 미국법인(LG Infocomm U.S.A.) 사무실. 팬택 사무실고 상황이 똑같다. 현지인들이 취업 인터뷰를 하려고 서류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LG전자는 미국법인을 3, 4세대 휴대폰 시장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샌디에이고를 차세대 휴대폰 연구개발(R&D) 센터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R&D 인력을 현재 20∼30명 선에서 2005년까지 200명으로 늘리기로 하고 한창 인력을 채용중이다.
LG전자 이병관 부사장은 “까다로운 미국 소비자들이 유럽식 바(Bar)타입에서 크램셀(Cram Shell, 폴더형) 휴대폰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고 카메라, MP3 등이 부가되면서 고급 기종을 찾는 소비자들도 부쩍 늘었습니다. 3세대 EV-DO 휴대폰부터는 LG가 선두로 인식되게끔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라고 말한다.
LG 휴대폰은 삼성전자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브랜드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LG는 전자레인지나 에어컨으로 인식됐으나 점점 휴대폰 회사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 추세다.
현지 밀착형 마케팅도 활발하다. 아이스하키팀(애너하임 마이티덕스), 농구(LA 레이커스), 축구(LA 갤럭시) 팀을 후원하고 있다.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신문, 잡지, TV 광고를 강화했으며 패션쇼와 뮤지컬 등 문화행사도 후원한다. 세계 최대 무선통신전시회인 미국 셀룰러 이동통신 및 인터넷산업협회(CTIA)의 ‘와이어리스 CTIA’ 행사에 기조연설도 하는 등 미국 오피니언 리더의 시선을 잡기 위한 노력도 적극적이다.
샌디에이고에서 4년째 근무하는 김기영 책임은 “처음 미국법인에 발령받았을 때보다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LG 휴대폰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지는 것을 실감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LA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김이영(62)씨는 한국 휴대폰을 쓴다.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다. “잘 터진다. 기능이 많고 디자인이 좋아 손자들이 좋아한다”라고 김씨는 설명한다. 그는 LA에서 어바인(Irvine)으로 가는 도로의 삼성전자, LG전자의 휴대폰 광고를 가리키며 “많은 미국인이 한국의 휴대폰을 쓸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메이시, 로빈슨, 블루밍데일 등 유명 백화점이 연결된 LA 산타모니카 쇼핑몰 거리의 휴대폰 매장은 삼성전자, LG전자의 휴대폰을 가장 보기 좋은 자리에 배치했다. 북미 시장에서 한국의 차세대 휴대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
어바인, 샌디에이고, LA(미국)=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
*인터뷰:이병관 LG전자 미국법인 부사장
“미국 시장에서 LG전자가 1∼2년 사이에 가장 성공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은 비결은 미국 법인에 독자적인 사업 추진 능력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북미 현지인의 취향을 고려하고 현지 생산과 A/S 체계를 갖추기 위해 현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LG전자 미국법인 이병관 부사장(CTO)는 LG의 성공비결로 가장 먼저 ‘현지화’를 꼽았다.
LG전자는 글로벌시장을 북미, 유럽, 중국, 아주/중앙아시아, 중남미, 한국 등 6개 지역별로 나누고 각 지역별로 ‘사업담당’을 신설해 각 사업담당이 상품기획, 마케팅 기능을 직접 관장하게 하는 등 독자적인 사업 추진 능력을 부여했다. 미국법인은 현지화를 위해 연구개발인력을 3배로 올리고 샌디에이고를 R&D센터로, 인근 멕시코 멕시칼리 공장은 생산기지 체제로 바꿨다.
“LG전자는 대부분의 휴대폰 생산은 한국에서 하고 북중미 시장 공략을 위해 멕시코에서도 생산을 하고 있지만 북중미가 차세대 휴대폰의 격전장으로 떠오르고 있어 멕시코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라며 “R&D센터와 인접,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LG의 성공 원인으로 선발업체들이 프리미엄급 휴대폰 시장의 경쟁 격화로 고전하고 있는데 비해 LG는 중저가 시장에서의 탄탄한 위치를 기반으로 프리미엄급 시장을 공략한다는 이점이 있다고 분석한다.
이 부사장은 향후 미국에서 3세대 휴대폰이 본격 시작되는 1∼2년 내 △가장 앞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제품 리더십’ △3G 장비사업과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세계 3대 휴대폰 업체로 부상한다는 목를 세웠다.
미국 이동통신 서비스는 현재 2세대를 지나 이른 3세대로 진입 중이다. CDMA는 버라이존과 스프린트가 2005년 CDMA2000 1X EV-DO 서비스를 실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GSM은 싱귤러가 현재 시범서비스(Edge) 중이나 2005년 서비스를 확대하고 이후에는 W-CDMA나 HSDPA 서비스를 실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는 유럽이나 중국보다 먼저 차세대 휴대폰 시장의 격전지가 될 전망입니다. 2세대에선 경쟁사에 비해 뒤졌지만 3세대이후부터는 선두 전략을 세워 세계적인 휴대폰 브랜드로 성장할 것입니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
*인터뷰: 이성호 팬택앤큐리텔 미국법인장
“오디오박스와의 계약을 끝내고 팬택의 독자 브랜드로 미국 시장을 돌파할 예정입니다. 북미 시장뿐만 아니라 남미까지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선 독자브랜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봅니다”
팬택엔큐리텔 미국 현지법인 이성호 법인장은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한 2단계 전략을 선보였다. 첫 해인 내년엔 CDMA 사업자브랜드(버라이존 등)를 통해 팬택의 이미지를 알린다. 규모가 커지면 2단계로 브랜드를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이 법인장은 이 전략을 ‘소프트 론칭’이라 불렀다.
“노키아가 미국 CDMA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전략을 바꿔 한국 휴대폰 업체들과 정면승부를 예고했습니다. 한국과 같이 CDMA폴더형 제품을 내놓고 EV-DO 휴대폰도 출시하는 상황입니다. 거꾸로 팬택은 노키아의 아성인 GSM 휴대폰을 적극 공략해 시장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팬택은 올해 북미 시장에서 600만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다. 이 중 CDMA가 100%를 차지하고 GSM은 아직 없다. 2년 내 GSM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GSM 서비스 사업자인 싱귤러와 T모바일과의 협력을 위해 싱귤러 본사(아틀랜타)와 T모바일 본사(시에틀) 주위에 사무실을 올 12월까지 개설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미국 GSM 휴대폰은 모두 바타입이었으나 클램샐 스타일로 만들고 가격 공세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저렴하지만 고급 핸드폰 이미지를 심는 것이 목표입니다”
중국 휴대폰 업체들도 결국 미국 진출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1년간 중국과의 최대한 격차를 벌리는 것이 팬택앤큐리텔의 과제다.
“미국 시장은 소비자와 서비스 사업자의 품질 요구수준을 맞추는 게 까다롭습니다. 중국 휴대폰 업체가 미국 시장 진출이 어려운 이유도 겉모습은 한국 것과 비슷하지만 품질은 달라서죠. 서두르지는 않겠습니다. 미국에서 서비스 사업자와 소비자에 기술을 인정받고 차세대 휴대폰 강자의 이미지를 심어 세계 5위권 메이커로 우뚝 서겠습니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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