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은 일반적으로 ‘그럴 것 같은’ 생각들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상식을 깨뜨리면서 발전해 왔다. 상식을 뒤엎는 새로운 시도야 말로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e스포츠가 탄생하고 발전해 온 과정을 들여다보면 상식을 흔들거나 파괴하는 몰상식(?)의 연속이 눈에 띈다. 애초에 점잖게 생긴 것들이 방송에 나와서 목소리를 높이고 흥분해 가며 방송 한 것 자체가 상식 파괴였다. 그 중심에서 하도 몰상식에 익숙해져버린 필자의 눈에도 이상하게 비춰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상식 파괴 시리즈 첫 번째. 모든 이벤트 최고의 집객요소(사람을 모으게 하는 프로그램)는 인기 가수 출연이다. 지지리도 지겹고 재미없는 행사에서도 인기가수 이효라, 부아, 시나 등이 나온다면 그 넓은 행사장이 꽉차고 모자라니 말이다. 헌데 그 철석같이 믿었던 상식이 통하지 않는 행사장이 있었으니, 그것은 초창기 한국 게임리그 이벤트 현장이었다.
때는 2000년대 초, 서울 여의도의 넓다란 장소에서 게임 대회가 열렸다. 당시만 해도 게임리그란 생소한 행사였으니 관객동원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대회 주최측이 고심한 것은 당연했다.
고민하던 주최측은 인기 댄스그룹 `N`모팀을 출연료 오십만원 깎아서 출연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행사 시작전, 인기가수 섭외에 성공한 담당 팀장은 만면에 득의의 미소를 짓고있었고, 드디어 무대에 막이 올랐다.
사회자(필자)가 외쳤다. “오늘 행사를 화려하게 시작할 축하무대입니다! 인기가수 N!!!!”
천신만고 끝에 섭외한 댄스그룹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 비명 등등과 함께 등장하여 행사장을 당근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끓여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어렵쇼? 예상과 달리 행사장은 썰렁함 그 자체였다. 앰프를 꽝꽝울리며 무대야 무너져라 춤을 쳐대는 가수와 안무팀이 안쓰러울 정도의 적막감은 첫 곡 내내 감돌고야 말았다.
순간, 필자를 비롯한 전 제작진의 눈에 객석을 채우고 있는 관객들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관객들로 비쳐졌다. 그리고 본 행사인 게임리그 결승전이 걱정스러웠던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이 끝나고 경기에 들어가자 그리고 과묵했던 관객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열광하는 것이 아닌가?
행사가 끝나고 제작진은 담배를 피워 물고 새로운 교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우리의 결론은 그랬다. 게임대회를 보러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치있는 것은 게임 대회 그 자체라는 것.
우리가 만드는 것을 보러오는 사람들은 게임대회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원한다는 것. 그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 따위를 원치 않는다는 것. 그랬다. 그들은 마니아였고, 전례가 만들어 낸 상식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새로운 대중이었으며 지금의 한국 e스포츠를 만들어 낸 주인공들이었다.
<게임케스터 nouncer@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