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툼 레이더’를 알지 못해도 아마 영화 ‘툼 레이더’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육감적인 외모와 몸매를 가진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게임의 캐릭터 라라 크로프트도 여배우의 인기에 뒤지지 않는다.
독특한 게임성과 신선한 캐릭터로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던 ‘툼 레이더’는 라라 크르포트라는 걸출한 인기 스타를 배출하며 게임사에 깊게 각인된 불멸의 게임이다.1996년 아이도스(Eidos)사는 매우 독특한 게임을 발표했다. 당시 게임계는 ‘페르시아의 왕자’와 ‘워크래프트’가 전세계를 강타해 게임에 대해 무지했던 많은 일반인들을 자각시킨 때였고 게임 개발자들도 이에 편승하면서 무수한 아류작을 양산하던 시기였다.
아이도스사도 예외가 아니여서 ‘페르시아의 왕자’가 구현했던 퍼즐같은 모험과 다채로운 움직임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짧은 머리의 근육질 남성이 적과 싸워 무찌른다는 방식은 구태의연했고 보다 색다르고 신선한 캐릭터가 필요하게 됐다.
육감적인 몸매에 고등 교육을 받은 미모의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는 그렇게 탄생된 것이다. 라라 크로프트는 게임 캐릭터의 위치를 벗어나 순식간에 엄청난 인기를 모으면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귀엽고 예쁜 여성이나 터프한 남성적인 매력의 캐릭터가 주류를 이뤘던 게임계에 라라 크로프트는 최초의 섹스 심볼 캐릭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툼 레이더’의 여주인공 라라 크로프트는 게임의 핵심이다. 이 작품의 완성도와 게임성은 뒷전이고 유저들은 라라 크로프트에만 집중했는데 여기에는 섹스 심볼의 매력이 가장 컸다.
초창기 기획에서 게임의 캐릭터는 용병같은 전투력을 지닌 근육파 남성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기존의 평범한 남성 전사와 차별화가 되지 않고 오히려 유저들의 거부감만 자극할 뿐이었다. 그래서 부드럽고 유연한 몸매와 현란한 기술을 가진 똑똑한 여성 캐릭터를 창조했다.
게임도 이를 위해 컨셉을 변경해 전투와 싸움신보다 퍼즐같은 두뇌 플레이, 유연한 기술로 헤쳐 나갈 수 있는 퍼즐 방식으로 전환됐다.
라라 크로프트의 원래 이름은 라라 크루즈였으나 크루즈는 아마존의 여전사와 같은 이미지였고 결국 최종적으로 세련된 외모, 육감적인 몸매, 뛰어난 운동 신경, 고등 교육을 받은 학벌, 젊고 엄청난 갑부라는 설정까지 입혀져 과거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캐릭터가 창조된 것이다.
아이도스사의 이러한 도전은 대성공으로 보상 받았다.‘툼 레이더’는 남성 유저들이 게임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해도 충분히 좋아한다는 사례를 남기며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PC 버전과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모두 발매됐는데 특히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은 본체의 판매와 저변 확대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남성 유저들은 라라 크로프트의 원화와 이미지, 스크린 샷, 피겨 등을 별도로 수집하며 열을 올렸고 다양한 포즈와 사진, 누드 등을 직접 제작해 인터넷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결국 라라 크로프트는 2001년 헐리우드로 진출해 영화로 만들어 지는 소수의 게임 중 하나로 간택됐다.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3억 달러를 벌어 들이며 제작사의 몸집을 키웠으며 2003년 공개된 속편 ‘툼 레이더: 더 크래들 오브 라이프’(Tomb Raider: The Cradle of Life)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캐릭터 디자인이 동양 정서에 맞지 않아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으지 못했지만 라라 크로프트는 유럽과 북미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진출한 케이스로 인정 받고 있다.라라 크로프트의 인기가 워낙 높아 실제 게임에 대한 관심은 적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툼 레이더’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를 표방한다. 그러나 실제 플레이는 액션보다 어드벤처에 강한 면을 보인다. 지금까지 발매된 시리즈는 총 6편이고 꾸준히 그래픽과 게임 시스템이 강화됐지만 이 타이틀만 가진 독특한 성격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게임 플레이 하나를 예로 들면, 거대한 지하 구조물에 라라 크로프트가 들어서면 문이 닫힌다. 수영장 만한 크기의 돌방에 갇힌 주인공은 뚜렷한 입구가 없어 당황하게 되는데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면 도저히 갈 수 없는 위치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출구에 도달할 수 없고 지형 지물과 라라 크로프트의 유연한 몸놀림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 먼저 벽에 돌출된 부분을 찾고 점프해 손으로 잡은 다음, 반동을 이용해 옆의 높은 구조물로 이동하며 조금씩 올라가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는 매우 단순한 방식 중의 하나다. 유저는 화끈한 액션을 기대하지만 실상은 고난이도의 퍼즐에 가까운 플레이가 주를 이룬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와 같은 게임 플레이는 ‘페르시아의 왕자’의 것과 유사하다.
여기에 ‘툼 레이더’는 쌍권총과 기관총 등을 포함해 적 캐릭터와 시원한 액션도 벌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저의 아이큐를 시험하는 ‘퍼즐’이 게임에 깊숙히 담겨 있었고 이러한 점이 청소년과 성인 유저를 모두 끌어 들인 요인이다.2003년에 발매된 ‘툼 레이더: 어둠의 천사’는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추세를 따라가지 못해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3D 폴리곤의 그래픽은 여전히 초창기 방식 그대로였고 라라 크로프트의 움직임은 추가된 것이 거의 없었다.
액션을 강화해 지루한 면을 덜고 멀티 엔딩 방식으로 다양한 분기를 만들었으나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게임이었지만 유저의 눈은 더욱 높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툼 레이더’와 라라 크로프트는 게임사에 과거의 영광만 기록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초의 섹스 심볼 캐릭터로 등장한 라라 크로프트의 명맥이 일본 개발사 테크모의 ‘데드 오어 얼라이브’로 이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곧 발매될 코나미의 ‘럼블 로즈’까지 여성 캐릭터의 섹시미를 강조한 게임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은 라라 크로프트와 ‘툼 레이더’의 영향이 컸다.
비록, 기억의 저편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지만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에 과감히 도전한 이 작품은 불멸의 게임 반열에 올라 마땅한 명작이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