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처 미국 A사, 수량 1개, DHL. 모터업체 에스피지의 생산일지에 적힌 내역이다.
에스피지의 전략은 확실하다. 고객이 원하면 단 한개의 모터도 제작하는 소량다품종. 한달에 생산하는 모델의 종류만 3000가지가 넘는다. 대량생산과 달리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하다보니 영업이익률도 높다. 지난 해에는 매출 370억원에 영업이익 53억원을 달성했다. 내년에는 기술연구소의 개발에 힘입어 500억원 매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에스피지는 73년 설립해 모터를 생산해온 성신에서 출발한 회사로 30년 모터 생산 노하우를 전수받아 91년 창립했다. 설립한지 3년만에 표준기어드 모터를 생산해 국산화했고 2001년에는 소형 표준 기어드모터 국내 시장의 52%를 차지해 국내 1위 업체로 등극했다. 이것이 에스피지의 현재 성적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모터 부문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에는 부족하다. 올해로 취임 3년째인 현창수 사장은 “(에스피지의 모터는) 중국업체가 가격으로 경쟁하기 힘든 분야”라면서도 차세대 제품 개발을 위해 연구원 60명으로 구성된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 중에서 뉴프로젝트 팀은 그야말로 다음세대의 성장동력 개발에만 몰두하도록 했다. 이들이 개발한 산업용 브러시 없는 직류(BLDC)모터는 내년부터 연간 매출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투자가 필요하다” 이것이 그의 생각이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호평하는 에스피지의 생산기술은 이러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가의 장비를 서슴지 않고 들여오는 것은 물론 곳곳에서 모터 전문가들을 모셔(?)오기도 했다. 에스피지는 여느 중견업체들이 갖고 있는 인력난 고민이 없다. 문제는 이러한 인력을 어떻게 관리하고 발전시키느냐다.
현창수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생겼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성과제를 도입했다. 내년부터는 연구소에서부터 생산직,사무직 모두 목표와 성과를 관리할 예정이다.
현 사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들었던 고민은 이렇다. ‘같은 기계로 같은 시간동안 일을 하는데 불량률은 왜 차이가 날까’ ‘똑같은 결과를 내놓고도 왜 임금은 차이가 날까’
생산직에 시범적으로 인센티브제와 포상제도를 도입했다. 현 사장은 “칭찬하고 그에 따른 상을 주는 것이 내 일”이라면서 “상 주느라고 조회시간이 길어진 것이 내가 취임한 후 가장 큰 변화”라고 농담을 던졌다. 성과제 도입 이후 표준 모터의 생산량은 시간당 47%가 증가했고 불량률은 60%가 줄었으며, 출결 등 시간 준수는 15% 향상됐다고 이춘직 생산부장은 전했다.
얼마전에는 일본 스미토모에서 경영기획 본부장이 주문자상표부착(OEM) 주문을 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에스피지의 생산현장을 보고는 귀국과 동시에 공장장을 파견해 견학시켰다. 축적된 생산기술과 관리능력을 보고 크게 감동한 이유라고 한다.
에스피지는 스스로를 겁이 없다고 평한다. 미국과 일본시장 장악에 이어 70∼80년 이상된 세계적 기업들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기 때문이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
*이끄는 사람들
에스피지를 정점에서 이끄는 현창수 사장의 약력은 독특하다. 십수년 전 그는 보험회사 직원, 성신(에스피지의 전신)은 그의 거래처였다. 에스피지가 성신에서 독립하고, 지금으로부터 딱 10년전 현 사장이 합류했다.
모터 국산화에 성공한 데 이어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그의 영업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94년부터 2002년까지 해외영업부에 근무하던 그는 탁월한 추진력을 인정받아 2002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임직원들은 그를 두고 목표를 정하면 달성하고야 마는 강력한 의지의 소유자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는 그 평가처럼 시스템 전환을 통한 생산력 향상은 물론 미래를 책임질 연구소와 설비에 대한 투자도 강력하게 추진했다.
기술연구소 60명의 사령탑인 연구소장은 여영길 이사가 맡고 있다.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한 회사에 몸담으면서 모터 기술 개발에만 전념했다. 개발이 한창일때에는 연구소에 야전침대 하나 두고 숙식을 해결하며 몰두하기도 했다. 에스피지의 미래는 그의 어깨 위에 있는 셈이다.
관리부문은 이승로 이사가 총괄한다. 성신에서 경리과와 기획실 근무를 하다 2002년 관리이사로 발탁됐다. 그는 앞으로 회사의 영업력과 직원들의 잠재능력을 일깨우는데 내년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생산라인을 책임지는 사람은 이춘직 생산부장이다. 대우전자 품질관리부에서 성신으로 파견근무를 나왔다가 당시 이준호 사장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입사했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품질 보증부에서 회사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윤진균 수석연구원은 효성중공업과 삼성자동차에서 중대형 감속 기어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 에스피지 기술발전에 공헌도가 크다. 중대형감속기어 노하우가 바탕이 돼 소형 감속기어 부문에서도 상당한 기술력을 자랑한다. 또 원만한 성격으로 기술연구소 전반을 이끌어 가고 있다.
*내가 본 우리회사: 이춘직 생산부장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10년 동안 에스피지는 몇 번의 진화를 거쳤다. 첫째는 90%이상을 일본 수입에 의존하던 소형 표준모터를 개발해 일본에 역수출한 것이다. 텃세가 심한 일본에서 100년 역사의 일본 모터업체와 같은 가격으로 판매할 만큼 발전한 것은 유통업자들도 놀랄 만한 일이다.
두번째는 국내 대기업도 미국에서 수입해 사용하던 냉장고 얼음분쇄기용 모터를 개발해 미국 M/K모터가 장악한 미국시장을 석권한 일이다. 수출을 시작한 후 M/K모터는 우리 가격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하고 말았다. 그간 CEO만 세번이 바뀌었단다.
기업의 성공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술자로서의 자부심과 세계 최고가 꼭 되고 말겠다는 의지가 기업 문화로 녹아들어 전 직원의 행동을 지배한다. 오늘도 진화와 창조라는 미래를 향해 에스피지의 겁 없는 도전 의지는 계속해서 발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