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주 화요일 옛 현대전자 이천공장단지 중앙식당. 옛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단지 내 CEO 및 임원 2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다. 단연 코리안 시리즈가 화제였다. 이제는 ‘현대’라는 큰 우산은 존재하지 않지만 ‘현대 맨’의 자긍심은 코리안시리즈 기간 내내 이곳을 하나로 만들었다. 현대유니콘스는 하이닉스가 지분의 70% 이상을 가지고 있다. 단지 내 CEO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화요일 모여 점심을 같이하고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교환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약 32만 평의 이천단지에는 과거 현대전자 시절 하나의 사업부 단위 조직들이 분사회사로 독립, 운영되고 있다. 97년 시작된 분사에 회의적인 반응도 많았으나, 이제는 각 회사가 각 사업부문에서 주요 기업으로 부상하면서 국내외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이천공장의 최근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역시 맏형 격인 하이닉스반도체의 부활. 8년간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쳐 이제는 영업이익이 2조원에 육박하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우량기업으로 변신했다. 경쟁국들의 상계관세 공세, 최근 일본 도시바의 특허소송 등 세계 메모리업계의 시기 어린 시선과 딴죽에도 굴하지 않고, 세계에 한국의 저력을 일깨워주고 있다.
현대전자 당시 제조사업부의 장비 교정과 제품 인증을 도맡아 했던 현대인증기술원(HCT)도 2000년 분사 이후 사업범위를 중소기업으로 확대하면서 국가공인 교정·인증 중추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HCT는 20억원 규모의 투자를 감행해 교정·인증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인증 범위도 대폭 확대했으며, 세계 주요 교정·인증기관들과 업무 협조를 통해 이 분야 세계적인 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기업들도 이천에는 수두룩하다. 모니터사업부문에서 분리된 현대이미지퀘스트는 PDP·LCD모니터 및 TV를 생산하면서 이제 국내외에서 명실상부한 종합 멀티미디어회사로 그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 회사 김홍기 사장은 “국내보다 해외 마케팅에 주력한 결과 중국과 유럽에서는 특급대우를 받을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며 “특히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중국 현지법인은 톈진시에서 6-7번째로 큰 제조공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 같은 해외에서의 명성을 역으로 국내로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자동차 전장사업부문에서 분리된 현대오토넷은 국내시장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세계시장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이 회사는 카 내비게이션, 카오디오, AV시스템, 차량의 각종 전자제어장치 등을 개발·생산·판매하면서 이미 국내 최대 카 내비게이션시스템 기업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이 회사 강석진 사장은 “국내시장을 넘어,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거대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공략을 위한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며 “중국 톈진공장을 거점으로 세계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오토넷은 해외 주요 자동차용 반도체업체와의 제휴 등을 통해 미래시장 준비에도 여념이 없다.
이 밖에도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반도체로 회사명이 바뀌는 과정에서 분리·독립해 이천에 둥지를 두고 있는 회사는 20여개로,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현대전자에서 인사를 담당했던 HCT의 이현희 사장은 “지금 이천공장단지에서는 현대와는 무관하면서도 과거 ‘현대 맨’의 긍지로 새로운 파도와 맞서 싸우는 기업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특히 맏형 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해 최근 단지 내 기업들이 활기를 찾아가면서 정보교환 및 화합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매주 화요일 점심’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