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차갑고 건조한 대륙성 시베리아 기단이 밀려오는 11월 중순에 겨울을 맞는다. 식물은 성장을 멈추고, 가을걷이 이후로 농경활동도 중단된다.
모든 자연이 동면으로 들어가는 시기, 바야흐로 김치의 계절이다. 김치는 긴 겨울철에 대비, 가을에 수확한 여러가지 채소를 소금과 젓갈, 마늘, 파, 고추가루 등의 양념을 버무려 적절히 가공하는 월동식품이다. 채소류가 나지 않는 겨울철 귀중한 식물성 식품의 공급원이다. 극성스럽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는 김치를 감기 예방에 좋고 사스를 막을 수 있는 건강식품으로 팔기도 한다.
김치를 보관하기 위해 지금까지 여러가지 방법이 사용됐다. 첫번째가 소금이다. 부산 등 겨울날씨가 포근한 곳에서는 김치가 시어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짜게 담았고, 한강 이북 지역에서는 소금을 덜 넣었다. 막연히 짠 소금만 넣기보다는 새우와 멸치, 굴 , 황석어 등의 젓갈도 넣었다. 동물성 단백질도 보충하기 위한 선인들의 지혜다.
두번째 저장방법은 땅에 묻기다. 조상들은 대체로 뒤뜰에 응달이 지고 눈이 잘 녹지 않는 곳에 김장독을 묻고, 거기에 움막을 해 덮었다. 유산균 발효에 좋은 옹기 속에서 김치를 일정한 온도로 유지시키기 위해 사용한 최고의 방법이다. 바로 김장독 문화다. 이것은 가전업체 연구진에 의해 김치 냉장고의 원리로 변화된다.
우리나라 ‘김치과학’은 김치 보관법에 달려 있다. 김치는 재료가 같아도 소금의 농도, 숙성 온도 등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 11월 하순의 땅 속 온도인 5도와 한겨울의 땅 속 온도인 영하 1도 사이에서 보관하는 것이 김치 보관의 기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김장독 묻을 공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젊은층에서 패스트푸드가 유행하면서 김치는 ‘냄새나는’ 변두리 식품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김치는 일반 냉장고 한구석에 크게 자리를 차지하는 ‘나이든 사람만을 위한’ 식품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김치혁명’이 왔다. ‘토종 가전’ 김치 냉장고는 이런 도시 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김치’ 중흥을 위해 개발됐다. 짜지 않고, 시지 않고 오랫동안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김치를 위해 태어난 김치 냉장고는 95년 등장 이후 폭발적인 보급률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김치냉장고의 보급률은 30∼40% 정도. 한 가정에 두대를 두는 경우도 생겨났으며 아예 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김치냉장고는 기존 냉장고와 다르다. 일반 가정용 냉장고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문이 열리고 닫힌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온도 변화가 크다. 이 때 내부 온도가 상승하면 냉매를 냉장실 내에 보내 떨어뜨린다. 급격한 온도변화는 김치 맛을 유지하는 데 치명적이다.
그러나 김치냉장고는 다르다. 옹기를 닮은 김치통에서 외부와의 노출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김치 맛을 유지한다. 땅에 묻은 김장독의 온도인 0도와 1도 사이를 오고가며 정밀하게 유지된다. 김치 냉장고의 내부 온도 조절은 직접냉각 방식과 간접냉각 방식에 의해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직접냉각 방식은 육류·채소 등 다른 식품의 맛을 유지하는 데에도 유용하며 간접냉각 방식은 김치 냉장에 주로 이용된다. 가전업체들은 최근 출시되는 김치냉장고에 식품에 따라 온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저장실 2∼3개를 넣고 있다.
최근의 김치냉장고는 ‘김치 숙성에 적당한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가, 저염도 냉장이 가능한가, 디자인이 심플한가, 냉각 방식이 어떤가, 김치 이외에 다양한 채소와 육류를 저장할 수 있는가, 저전력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가전매장에 가보면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이러한 김치냉장고 간의 차이를 쉽게 구별할 수 없다. 기술력이 향상되면서 업체 간 차이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