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컬렉션]세계를 뒤흔든 불멸의 게임(25)윙코맨더

‘윙 커맨더’는 비행 슈팅의 장르를 한 단계 끌어 올리며 게임의 스토리와 밸런스를 완변하게 짜 맞춘 감동의 작품이었다. 엄청난 고사양의 PC를 요구하면서도 게이머들의 인기를 잃지 않았던 마력을 지닌 이 게임은 올드 게이머에게 추억과 꿈을 선사한다.

오리진(Origin)이라는 게임 메이커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오래 전부터 게임을 즐겨온 소위 ‘올드 게이머’로 인정받을 만하다. 지금 오리진은 산산이 흩어진 이름이 되었지만 과거 80, 90년대에 이 개발사는 ‘명작 제조사’와 같은 의미로 인식됐다.

 ‘울티마’ 시리즈를 만들어 수 많은 유명 크리에이터들조차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히고 우리 나라의 NC 소프트 산하에서 온라인 게임 ‘타뷸라 라사’를 만들고 있는 리차드 개리엇. 그리고 ‘대도(Thief)’, ‘데이어스 엑스(Deus Ex)’ 등 많은 명작 게임을 통해 1인칭 액션에 잠입과 RPG 요소를 접목했던 워렌 스펙터.

또 지금 이야기할 ‘윙 커맨더’ 시리즈 등으로 우주전의 짜릿함을 통해 많은 게이머들을 열광시켰던 크리스 로버츠 등 뛰어난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있던 곳이 바로 오리진이었다. 이제,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 사명처럼 뛰어난 게임과 크리에이터의 기원이었다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많은 명작 게임들이 오리진을 통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에서 시리즈가 발매될 때마다 살인적인 PC 사양을 요구하며, 전세계 게이머들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오로지 이 게임을 위해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 바로 ‘윙 커맨더’다.간단하게 설명해서 ‘윙 커맨더’는 우주를 무대로 한 3D 플라이트 슈팅 게임으로, 킬라시라 불리는 외계 종족과 인류의 전투를 그리고 있다. 현대의 게임들은 화려한 3D 그래픽이 난무하는 세계지만 3D의 개념조차 희미하던 당시에 2D 그래픽으로 3D를 느끼게 하는 체험성은 탁월했고 놀라웠다.

그리고 그 그래픽 속에서 절묘하게 잘 짜인 밸런스와 타격감을 가미해 게임 자체의 재미도 뛰어났다. 당시에는 ‘팔콘’ 시리즈 등 유명한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이미 있었지만 이 게임은 남달랐다.

기존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게임의 경우, 대부분 스토리보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전투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그 만큼 기존의 슈팅 게임과 다른 - 실제 전투기를 모는 듯한 느낌에 대단한 매력이 있었고 많은 게이머들이 비행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윙 커맨더’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당시 가장 일반적이었던 사실적인 공중전이 아닌, 우주전을 배경으로 한 것을 십분 활용해 마치 SF 영화를 보는 듯한 스토리와 그것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의 성장, 같은 편대를 이루는 동료 조종사들과의 팀웍 등을 멋지게 표현하며 재미를 배가 시켰다. 이는 당시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독특한 요소였으며 많은 게이머들이 이 작품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물론 이런 요소들은 게임의 기본이 되는 ‘플라이트 슈팅’의 게임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다. 스토리만 재미있고 막상 게임 자체는 재미없는 게임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영화를 보는 게 낫지 않은가.또 이 작품은 공중전의 재미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게임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당시 대부분의 작품들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실제 비행과 비슷하게 만들어 실제감을 줄 것인가’에 집중했다. 덕분에 마니아층을 제외하고는 이 장르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윙 커맨더’는 그런 성향을 과감히 탈피하고 최대로 간편한 조작과 직관적인 기동을 통해(무중력인 우주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겠지만) 많은 게이머들이 쉽게 이 장르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와 같은 ‘윙 커맨더’의 성향은 이후 많은 작품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이 타이틀의 성공은 유사 게임들이 제작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윙 커맨더’ 이후 게임들은 ‘윙 커맨더’가 가졌던 절묘한 밸런스와 재미, 드라마틱한 스토리 등을 전혀 맛 볼 수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윙 커맨더’가 얼마나 뛰어난 작품이었는지 반증하는 것이다.이 시리즈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크리스 로버츠. 사실 그의 이전 작품을 생각해보면 단번에 첫 작품을 이 정도의 완성도로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가 ‘윙 커맨더’ 전에 참여했던 작품들은 ‘울티마 V’, ‘타임즈 오브 로어’, ‘배드 블러드’ 등 전부 롤플레잉 게임이었기 때문이다(다들 수작 이상의 뛰어난 작품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게임이 세상에 나올 수 없을 뻔 했다는 것. 발매 직전에 오리진의 세일즈마케팅 담당 이사는 이 작품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출시를 보류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위기를 넘기고 대형 성공을 기록한 이후 크리스 로버츠는 작품을 계속 보완하고 후속작을 제작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감행했다.

‘윙 커맨더’의 탁월한 부분인 스토리는 점점 영화적인 성격이 강해졌고 ‘윙 커맨더 3’에서는 마크 해밀(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 역으로 유명한)이나 말콤 멕도웰 등의 실제 배우들을 기용해 게임 속의 스토리 전개 부분을 영화처럼 만들어내기도 했다(반대로, 시리즈의 이런 특성과 인기 덕분에 실제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오리진을 나와 자신의 게임 회사인 디지탈 앤빌(Digital Anvil)을 설립하면서 아쉽게도 ‘윙 커맨더’는 혈통을 잃어 버렸다. 크리스 로버츠는 ‘스타랜서’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해 만든 ‘프리랜서’, ‘브루트 포스’ 등 통해 계속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게임은 언제나 변한다. 그리고 인기 있는 게임의 장르 역시 변한다. 지금은 플라이트 슈팅 장르가 더 이상 주류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스테이션 2로 발매되는 남코의 ‘에이스 컴뱃’ 정도가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윙 커맨더’를 부활시켜 달라고 한다면 그건 그저 팬으로서의 억지일까? 다시 블레어 대령이 되어 우주를 누비는 그 짜릿함을 느껴보게 해 달라고, 아군 윙맨의 뒤를 노리는 킬라시 종족의 전투기를 사정없이 날려버릴 때의 그 쾌감을 다시 느끼게 해 달라고 한다면 말이다.

진정, 과거의 명작들은 게이머들을 꿈꾸게 만드는 힘이 있으며 그런 희망이 오늘도 PC와 콘솔 게임기의 전원을 켜는 근원일게다.

<이광섭 월간플레이스테이션기자 dio@gamer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