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킹]그라비티(상)

수 많은 벤처중 성공하는 한 기업들은 몇가지 공통점이 눈에 띤다. 무엇보다 대박을 터트리는 경우 대부분 ‘최초’ ‘신개념’ ‘차별화’ ‘새로운 시도’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남들이 이미 지나간 검증된 길이건 남들이 가지 않은 위험한 길이건 만날 수 있겠지만, 대성공을 하는 경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갈 때만 가능한 법이다. ‘라그나로크’란 온라인 게임 하나로 세계 시장을 평정한 그라비티 역시 과감하게 새로운 장르와 해외시장 개척으로 신화를 만든 벤처다.

어느 시장이나 초기엔 치열한 경쟁 관계가 구축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상태는 업체들 사이에 서열이 매겨지면서 정리되는데, 이때 강자들은 시장을 지배하고 나머지는 자연 도태되거나 흡수되면서 점차 성숙 시장의 모습을 형성한다.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 발전 과정 역시 이같은 전통적인 시장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급속도로 변하는 기술 흐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만큼 과감한 차별화와 진취적인 전략 설정을 통해 이른바 메이저업체로 기민하게 발돋움한 업체들이 있다. 그런 대표 주자가 다름아닌 ‘라그나로크’란 온라인게임 하나로 세계 시장을 장악한 그라비티다.

# 차별화된 게임시스템과 캐릭터

그라비티가 출범한 2000년 봄 당시 이미 온라인 게임 시장은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리니지’ 등 주류 게임을 좇는 아류작들이 우후죽순 양산되던 시기다. 하지만 그라비티는 개발 초기부터 또 하나의 비슷한 게임을 만드는 길 대신 전폭적인 차별화의 길을 택했다. 우선 폭력성과 경쟁이 배제된 커뮤니티 게임 컨셉트가 그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온라인게임은 아이템 획득 수단이 될 수 있는 플레이어킬링(PK)이나 공성전 등을 통해 상대 게이머들보다 더욱 강해지는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를 제공하는 것이 주류였다.

그러나 ‘라그나로크’는 PK 대신 상호 보완이 가능한 여러 직업군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싱글 플레이 대신에 상대방과 협동이 필요한 공동 퀘스트를 수행케 함으로써 유저들이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이와함께 강력한 채팅 기능과 아바타성이 짙은 장식 아이템 등을 도입했다.

게임을 하면서 다른 유저들과 친해지고 인간 관계가 확대되는 게임의 순기능을 극대화시킨 것. ‘홀로 강자가 된다’라는 즐거움을 넘어 ‘함께 강해진다’는 새로운 과업을 유저들에게 제시, 협동 플레이를 선호하는 유저층을 새롭게 창출해 낸 것이다.

귀여운 느낌의 3등신 캐릭터도 차별화 포인트. ‘라그나로크’의 캐릭터 디자인은 당시 주류였던 8등신 캐릭터와 차별화되는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밝고 화사한 느낌의 배경과 낙관적인 세계관과 조화되어 전체 게임을 평화롭고 재기 발랄한 분위기로 이끌어간다. 당시 게임들이 암울한 분위기를 지향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일본 게임의 귀여운 캐릭터에 노출된 전세계 많은 게이머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라그나로크’ 유저 중에 여성 비율이 높은 것도 이같은 귀여운 캐릭터성 탓이다.

# 사용 환경에 맞춘 마케팅 전략

그라비티는 또 많은 게임 개발사들이 추구하던 풀3D 대신 2D와 3D의 적절한 조화를 선택했다. 당시 컴퓨터 환경을 감안해 캐릭터에 2D를, 배경에 3D 기술을 접목해 비교적 낮은 사양에서도 고품질의 그래픽을 구현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회사는 특히 사양 뿐 아니라 풀3D에서 기술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캐릭터의 아바타성이 2D 캐릭터에서 자연스럽게 묘사되면서 기존 게임들이 간과하고 있던 새로운 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이는 그라비티가 PC 사용환경이 열악한 동남아 등 해외 진출에 성공하는데 최대 강점으로 작용했으며, 이로 인해 ‘라그나로크’는 글로벌 온라인 게임으로 안착했다.

개발에서부터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빈틈없이 짜여진 그라비티의 마케팅 전략이 제대로 먹혀든 것. 그라비티는 이후 횡적으로 일본, 중국 등 비슷한 문화권에 속해 있는 아시아 국가들을 필두로 북미, 유럽 등 진출영역을 차례로 확대해 나갔다. 종적으로도 온라인 게임을 기반으로 모바일 게임, 애니메이션, 콘텐츠, 캐주얼 게임 등 다양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신화를 이어갔다.

<원대로 KTB네트워크 벤처캐피털리스트 drwon@kt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