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게임의 미래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멀티 게임입니다. 이는 모든 게임의 추세이기도 하죠. 발전하는 모바일 환경에 맞춰 해외 시장 개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3일 BREW 기반의 네트워크를 이용한 국제 모바일 게임 ‘ANC한일포커’를 선보인 애니콤소프트웨어 박승진 사장(38)의 말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유저가 모바일로 네트워크 대전을 펼칠 수 있는 ‘ANC 한일포커’는 모바일 게임 사상 처음으로 시도되는, 말 그대로 국가간 연동게임의 시험작. 네트워크 기능을 이용해 양국 언어로 채팅까지 할 수 있다. 그 의미로만 본다면 박 사장은 바로 ‘한일 글로벌 모바일 게임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박 사장이 이끌고 있는 애니콤소프트웨어는 이미 2003년부터 미국 최대 이통사인 버라이존(Verizon)과 일본 KDDI에 20여 종의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올 10월까지 누적 다운로드수 70만건을 넘어 약 1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모바일 게임 개발사는 400여개에 이릅니다. 경기 침체와 맞물려 매출 감소 및 치열한 경쟁 속에 명확한 매출 증대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다수 업체가 해외로 수출을 추진하지만 현지 퍼블리셔와의 열악한 수익배분이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게임 서비스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 시장에서 생존을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이는 네트워크 게임을 만들게 된 동기이자 박사장이 가진 커다란 고민이었다.
“일본 등 주요 해외 시장은 현지 개발사 및 퍼블리셔의 게임 개발 및 공급 프로세스가 안착 돼 내용과 기술 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서비스 자체가 불가능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자체적으로 현지 이통사의 CP(Content Provider) 라이센스를 확보했습니다. 자체 개발한 게임을 직접 서비스할 수 있어 매출 증대 효과뿐 아니라 해외 진출을 원하는 다른 국내 개발사에게도 해외에 게임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심화된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의 돌파구는 결국 나름대로의 기술 우위를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게임과 서비스라고 판단했고 적극적으로 네트워크 게임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깡패’와 ‘외곬수’, 그리고 ‘골통 기질’
애니콤에서 박사장은 깡패로 통한다. ‘이거다’ 싶으면 앞뒤 안 가리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밀어붙여서 성공을 거두면 깡패가 아니라 경영의 천재니 전략의 귀재로 불렸겠지만 여러 비즈니스가 시장에서 채 평가도 받아보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독단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고는 밀어 붙이는 바람에 주위에서 욕도 많이 먹었어요. 성공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적이 더 많다보니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듭니다.” 모든 뒤처리를 감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개발총괄이자 회사 부설 연구소를 맡고 있는 박 사장의 친동생 박승철 소장이었다.
지난 97년 일본에서 다마고치 열풍 소식이 전해졌을 때 자체 개발한 다마고치 게임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 밀어붙이기의 시작이다. 기기는 대만을 통해 들여오기로 하고, 회사 개발진을 부추겨 게임을 만들게 했는데 그만 IMF를 맞았다. 기기 수입에 따른 자금 부담을 견디지 못해 그 자리에서 접고 말았다.
또 다른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삐삐’가 한창 주가를 높이던 시절, 삐삐에 게임을 넣어 보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핸드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삐삐는 누구나 소유하고 있던 대중적인 모바일 기기였죠. 이 삐삐에 게임을 이식해 팔아보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그래서 버튼 3개로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슈팅게임을 기획했어요. 그런데 개발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휴대폰 발신 번호 표시서비스가 시행되는 거예요. 핸드폰 보급이 크게 늘었고 삐삐는 급격한 사양길로 떨어졌죠. 결국 개발한 게임은 한번 써먹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습니다.”
# 까다로운 일본 검수 절차 통과
그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잡화 유통인으로 영업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탓인지 부딪혀 깨지는 것에 달관한 듯하다. 앞서 실패를 얘기할 때도 마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듯 했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ANC 한일포커’는 이러한 박 사장의 ‘골통 기질’이 아니면 나오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무려 1년 반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개발됐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 존재하는 양 이통사를 대상으로 2가지 버전의 게임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를 위해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언어 및 문화적 특성을 극복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특히 한국보다 까다로운 KDDI 검수를 통과하기 위해 방대한 문서를 번역하고 이해해야 했으며 일본 현지에 많은 인원이 직접 건너가 건물의 지하실, 엘리베이터 안 등 여러 곳에서 직접 네트워크 접속 상태를 확인하는 테스트는 정말 힘든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게임 개발을 위해 한일 양국간의 유무선 네트워크 관련 다양한 기술이 적용됐다. 기본적으로 서버 부분에서 표준소켓(Standard socket) 방식을 이용한 무선 네트워크 라이브러리(Wireless network library) 기술, 패킷(Packet) 량의 동기화 및 조절을 위한 데이터 패킷량 모듈(module)화 기술, 이통사별 게임 플레이어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각각의 데이터를 연동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연동 기술, 해킹 방지를 위한 사용자 인증 솔루션 기술 등은 기본이었다.
클라이언트 부분(Client part)에서 일본 내 구축된 서버에 원격으로 OS 등 각종 프로그램을 설치 조정해 네트워크와 클라이언트(Client)의 연동을 이상 없이 수행하기 위한 원격 서버 컨트롤(Server control) 기술과 2인 이상의 멀티 게임 플레이(Multi play) 때 방대한 정보를 보다 빠르게 전달하기 위한 데이터 압축 기술, 국가간 네트워크 연동 기술도 적용됐다.
이 같은 노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국가간 실시간 네트워크 플레이가 가능한 모바일 게임이 등장한 것이다. 게임방법을 잘 모르는 유저를 위해 연습모드를 지원하고 각 게임방법을 숙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일본 특유의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 한·중·일 네트워크 야구 게임 만들 터
KDDI와 KTF를 통해 선보인 ‘ANC한일포커’ 게임 서비스를 계기로 박사장의 꿈은 더욱 커졌다. 앞으로 일본은 물론, 미국과 중국 모바일 게임 유저와도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구상하고 있다. 각 나라의 현지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게임을 개발하는 동시에 모바일을 통한 문화적 커뮤니케이션을 선도할 수 있도록 신규 네트워크 게임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그는 국내 다른 개발사의 게임을 일본에 서비스하기 위해 퍼블리싱 사업 계획을 진행 중에 있다. 오는 2005년 상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다량의 한국 게임을 일본에 선보일 예정이다.
“다음번에는 야구를 가지고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을 묶어 보고 싶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조만간 모바일 네트워크 게임 전성시대가 오겠죠. 이때 세계를 무대로 네트워크 모바일 게임을 서비스하는 기업이 바로 우리 회사의 비전입니다.”
1985 홍익고 졸업
1987 신흥보건전문대 졸업
1990 원인터내셔널 입사
1993 진주유통 설립
1994 애니컴소프트웨어 대표
<임동식기자 임동식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