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에는 기정(技正)이라는 직책이 있다. 해당부문에서 일가견을 이룬 기술인에게 부여하는 명칭이다. LG전자 기술직은 사원으로 시작돼 기사, 주임, 기장(技長), 기정(技正), 기성(技聖)으로 순으로 구분된다. 기정을 하려면 20여 년, 기성은 30여 년이 지나야 하고 그것도 테스트를 거쳐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이다.
LG전자 창원사업장 냉장고사업부 김운진 기정(50)은 냉장고를 수출하기 전, 각 국가에서 요구하는 규격에 적합한가를 테스트한다.
미국·유럽·호주·멕시코·일본·중국 등 수십여 개 국가마다 다른 냉장고 품질과 관련된 수백여 가지 규정과 항목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까다로운 업무다.
김 기정은 냉장고 사업부 품질관리(QA) 그룹에 근무하면서 해외 규격에 대한 정보가 없어 애를 먹었던 초기 시절,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며 이를 마스터 했다. 자료를 번역해서 공유하기도 하고, 또 복잡한 조례를 정리해 동료에게 나눠줬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김 기정은 사내는 물론 산업기술원 등 외부의 규격 관련부서에서도 시험방법에서의 의문점에 대해 협조를 요청받을 정도로 규격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됐다.
“냉장고 해외개발 시험업무를 혼자서 맡으면서 각종 해외 규격시험을 접하게 됐습니다.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독학으로 미국, 캐나다, 일본, 유럽 등의 규격을 조사, 규격시험을 하면서 많은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나 혼자만 알아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부서원 교육에 적극 나서게 됐습니다.”
김운진 기정에 대한 에피소드는 많다. 그 중 ‘신발 사건’이 창원 사업장 내에 가장 유명하다. 냉장고는 출시되기 전 극지방의 추위와 적도의 더위를 견뎌내는 환경변화시험을 한다. 영하 30℃∼ 45℃를 오르내리는 급격한 환경변화를 주며 정상작동 여부를 판단하는 시험이다. 사건은 김 기정이 영하 30℃ 내의 측정실에서 몇 시간째 일을 하면서 벌어졌다. 그만 신발이 실험실 바닥에 얼어 붙어 버린 것. 떨어지지 않는 신발을 억지로 잡아당겼더니 그만 신발이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이 소문은 창원 사업장에 삽시간에 퍼졌다.
그의 좌우명은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와 ‘내가 한 일은 내가 책임진다’다.
“수출품 품질을 책임지고 있는 저희로서는 아무리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일단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고, 그 결과는 곧바로 회사의 손익과 고객의 신뢰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김운진 기정의 꿈은 소박하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한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이며, 건강하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희망”이기 때문이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