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5월. 임락철(47세) 브이케이 부사장 겸 최고재무관리자(CFO)는 신용보증기금 평택지점을 찾았다.
그 해 3월 발생한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의 영향과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창립 이래 최대 위기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권의 대출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현금유동성에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임원들에게 지급된 승용차 및 골프회원권을 매각하고 사옥통폐합 등을 통해 비용절감을 꾀했지만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임 부사장은 지점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유리창 닦는 사람이 유리창 깨는 것 아닙니까. 믿어주십시오”라는 말로 당시로서는 적잖은 100억원의 보증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보증을 받아내는 데 실패했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단말기 제조사로 부상한 오늘날의 브이케이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임 부사장은 “그 때 30명이었던 단말기 연구개발(R&D) 인력으로는 흑백 휴대폰에서 컬러 휴대폰으로 급변하는 기술을 따라잡기 역부족이었다”며 “그래도 ‘우리는 다르다’라는 말에 위험을 감수하고 보증을 서준 당시 지점장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당시 직원수를 줄이는 구조조정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판매관리비를 10% 줄인다고 매출이 10%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수한 인력확보에 대한 투자는 아깝지 않다”는 말로 인재제일주의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회계학을 전공한 임락철 부사장은 지난 82년 기업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20년간 금융맨으로 재직하다 지난 2002년 4월 브이케이에 합류했다.
“돈의 끝자리 숫자를 맞추는 금융업에 비해 휴대폰 제조업은 살아움직이는 인체와 같다”며 “영업, 물류, 제품개발 등 각 부분의 유기적인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두 업종의 차이를 설명한다.
이철상 사장이 해외영업과 단말기 연구개발(R&D)을 위해 출장이 잦기 때문에 그는 재무·인사·구매 등 안방살림을 도맡아 한다. 그래서 젊은 여직원에게는 작은 실수를 보듬어 안아 주는 듬직한 아버지, 30∼40대 중간간부들에게는 맏형과 같은 존재다.
직원들에게 “도전적이고, 용기있는 삶, 정직한 생활”을 주문한다며 “우리 기업문화에는 경영학 원론에도 나오지 않는 ‘모럴헤저드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자신의 경영관을 피력했다.
임 부사장의 직무실에는 CFO의 위치를 증명이라도 하듯 커다란 철제 금고 2개가 놓여 있다. “금고에 돈이 가득 쌓이는 날이 빨리 와야 할 텐데”라며 건낸 그의 말이 결코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김원석기자@전자신문, stone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