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스 그레시·로버트 와인버그 지음, 이한음 옮김, 한승 펴냄.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고대 마법의 시대에 등장할 법한 초능력을 갖춘 영웅은 영화, 만화, 소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다. 보통 슈퍼영웅들은 전세계나 특별한 지역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다. 슈퍼영웅들은 항상 선의 편에 서서 대문자 E로 시작하는 거대한 악(Evil)과 싸운다. 그들은 거대한 폭력 앞에 내던져진 나약한 현대인을 멸망이나 악의 지배에서 구하는 수고를 감내한다.
몸을 비정상적으로 확장하거나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시간을 되돌리는 등 과학으로도 실현할 수 없고, 현실에선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슈퍼영웅의 황당무계함에 현대인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거대한 시스템 아래서 별 다른 능력 없이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일탈’에 대한 욕망을 슈퍼영웅이라는 존재를 통해 확인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이 책은 현대인의 동경의 대상인 슈퍼영웅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논리와 과학적 탐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SF에 기반을 둔 만화영웅을 주로 다루고 있다. 즉 슈퍼영웅을 과학과 기술을 통해 상세하게 연구하고 분석함으로써 그들의 능력, 탄생 과정, 모험을 현재 가능한 것과 미래에 가능한 것,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그레시와 와인버그는 슈퍼영웅 뒤에 어떤 과학원리가 숨어 있는지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때문에 슈퍼맨의 존재 가능성을 칼 세이건이나 천문·물리학자들의 이론을 총동원해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는 영웅을 현실적으로, 즉 믿을 만한 존재로 만들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단지 슈퍼영웅을 묘사하면서 과학적인 접근방법을 채택해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슈퍼영웅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배경과 과학적 환경을 소개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대표적인 사례가 슈퍼영웅의 시대에 따른 변천 분석이다.
지난 60년간 출간된 만화에 등장하는 슈퍼영웅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경이로운 과학기술 덕분에 능력을 갖게 된 영웅이며, 다른 하나는 마법으로 능력을 얻고 새로운 복장으로 치장한 전사들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과학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확산되면서 첨단 기술로 탄생한 슈퍼영웅이 많았다. 슈퍼맨의 능력은 점점 배가됐으며 슈퍼맨의 능력을 꺾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절대 악과 자연현상이 사라졌다.
1970년대 들어서는 반문화혁명의 열기가 퍼지면서 마법과 초자연적인 슈퍼영웅들이 득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후 20년간은 과학과 마법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경향을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간에 등장한 슈퍼영웅은 재즈나 감자칩, 추리소설과 더불어 미국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사실 슈퍼영웅의 가장 명쾌한 정의는 ‘미국인이 꿈꾸는 영웅’이다. 자연의 힘, 부패한 정부, 외계 침략자와 같은 적과 맞서 싸우는 슈퍼맨, 스파이더맨, 헐크 같은 영웅은 미국인의 모습을 반영한 산물이라는 사실도 꼬집는다.
이 책은 지난해 4월 의사소통전문가협회의 로체스터 지부상 시상식에서 대중과학과 만화 관련 서적으론 처음으로 ‘2003년 전시회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만화 속 슈퍼영웅은 과학세계를 여러모로 탐구하도록 해주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또 만화 속 세계와 과학의 토대가 되는 현실세계의 차이를 보여준다. 책을 읽다 보면 현실과 만화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만화 속 세계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이규태기자@전자신문, kt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