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게임개발자들이 밀리터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인간의 생사고락이 극명하게 드러내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액션 장르에서 밀리터리는 가장 쉽고 다루기 간편한 소재로 각광받고 있으며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해소에도 그만이다. 그러나 밀리터리는 깊이 알면 알수록 전문적인 지식과 역사에 대한 이해를 요구해 쉽게 접근하다간 큰 코 다친다.
# 영원한 테마, 제 2차 세계대전
제 2차 세계대전을 시작한 히틀러와 독일에게 게임 유저들은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덕분에 인류의 문화는 수많은 영화와 소설, 시, 뮤지컬, 음악,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계에서 2차 세계대전은 영원한 테마로 자리잡으며 장르를 막론하고 이 소재의 게임은 일단 관심이 집중된다. 전쟁터에서 피어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따뜻한 전우애와 비정한 인간성은 게임에서 항상 볼 수 있는 핵심적인 주제다.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일인칭 액션 게임은 ‘맨 오브 벨러’, ‘메달 오브 아너’, ‘콜 오브 듀티’, ‘배틀필드’ 등이 대표작이다. ‘맨 오브 벨러’는 톰 행크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해 세계적으로 히트한 HBO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이더스’가 원작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의 해변 후방으로 침투한 공수부대원들의 전투를 그린 이 작품처럼 그대로 플레이가 전개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빠질 수 없는 게임이 바로 ‘메달 오브 아너’다.
이 게임의 첫 도입부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마하 비치 상륙 작전을 고스란히 구현해 유저들로부터 커다란 찬사를 받았으며 최근에는 확장팩 ‘퍼시픽 어썰트’에서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까지 살려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개발자들이 독립해 새롭게 제작한 타이틀이 바로 ‘콜 오브 듀티’다.
이 게임은 2차 세계대전의 유명한 발지 전투, 스탈린그라드, 북아프리카 전선, 마켓가든 작전 등을 주 무대로 삼으며 유저에게 다양한 전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현재 가장 뛰어난 일인칭 액션 게임으로 인정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배틀필드’는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주축인 타이틀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상황을 약산의 상상력과 숨겨진 비밀 무기를 토대로 만든 이 게임은 유저가 원하는 주특기 임무를 선택해 전장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까지 선사한다. 일반 소총수부터 중화병기, 전투기를 조정하거나 폭격기, 전차에 탑승해 상대편과 맞설 수 있다. 뚜렷하게 정해진 실제 전쟁터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 미국이 진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다룬 게임도 많다. 그런데 미국 개발사들은 이런 소재를 조금 꺼리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미국이 “졌다”며 도망치다시피 베트남에서 철수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베트남’이나 ‘베트콩’ 같은 액션 게임이 출시됐고 일인칭 액션 게임 마니아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이 두 게임 모두 타이틀 제목과 달리 주인공은 역시 미군이다. 하노이나 지하 땅굴 등이 게임에 구현되고 유저는 미국 병사가 돼 귀신처럼 신출귀몰하는 -혹은 멍청한 -베트콩 병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살한다. 마치 전쟁에서 진 화풀이라도 하 듯 게임이 진행되는 부분이 있어 묘한 기분마저 든다. 베트남전은 일인칭 액션 게임보다 ‘코만치’나 ‘아파치’ 등 헬리콥터 비행 시뮬레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 특수 전사들의 대활약
전쟁은 희생을 요구하지만 영웅도 탄생시킨다. 전투로 단련된 인간 병기들은 사회에서 딱히 할 일이 없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그들은 자연스럽게 용병이 돼 세계의 분쟁에 투입되는데 ‘솔저 오브 포춘’은 이러한 용병들을 다룬 작품이다.
용병이라고 전투의 신은 아니겠지만 이 게임에서 그들은 천하무적의 람보로 표현된다. 또 ‘레인보우 식스’는 가상의 특수 부대를 소재로 테러리스트와 각종 특수 임무를 해결하는 작품으로 일인칭 액션 게임의 멀티플레이를 보급시킨 타이틀이다.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을 악의 축으로 묘사한 면이 많아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잠입 액션 게임 ‘스플린터 셀’과 ‘메탈 기어 솔리드’ 등 총을 쏘지 않고 적의 기지에 은밀히 투입해 각종 미션을 완수하는 작품도 있다. 이쯤되면 특수 부대나 용병이 아니라 거의 007 요원에 가까워진다. 그 중에는 북한을 무대로 작전을 펼치는 게임도 있어 국내 심의 통과가 관심꺼리다.
한편 굳이 실제 전장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 단순 밀리터리 소재의 게임도 있다. 바로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대표적인 케이스. 이 작품은 특수 부대와 테러리스트의 대결을 그리고 있으며 유저는 오로지 상대편을 사살하는 것이 목적인 멀티플레이 전용 타이틀이다.
특히 이 게임은 M4A1이나 AK-47 등 총기류의 반동과 탄착군 형성, 시야의 움직임 등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해 가장 인기있는 일인칭 액션 게임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 진정한 전략의 시도
밀리터리가 액션에 적합한 게임이지만 전략 시뮬레이션에도 딱 맞는 게임이다. 전쟁은 고도의 두뇌 플레이이며 상대의 생각을 읽어 내야하는 천재성이 필요하다. 턴 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은 최고의 병법과 지략을 추구하며 가장 플레이하기 어려운 장르 중의 하나다.
‘팬저 제너럴’ 등 SSI에서는 턴 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을 무수히 탄생시켰으며 국내에도 소수였지만 열광적인 마니아층을 만들었다. 이 게임들은 유저가 연대 단위로 명령을 내리며 전차 부대와 포병 부대, 공수 부대, 보급 등 자신의 예하 부대를 치밀한 전략에 의거해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역습을 당하거나 보급이 끊기고 결국 몰살당하기 일쑤다. 프랑스 마지노선 전투에서 독일군이 사용했던 전격 작전이 실제 통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장르는 육사 생도와 현역 장교들이 즐겨 플레이하며 전략을 연구한 것으로 유명해 PC 통신 등에서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멀티플레이도 가능했는데 놀랍게도 e메일을 통한 시스템도 있었다.
이 방식은 자신이 턴을 한번 실행하고 세이브 파일을 저장해 상대방에게 메일을 보내면, 메일을 받은 상대방이 첨부된 세이브 파일을 지정된 폴더에 저장하고 게임을 실행시켜면 상대방의 작전이 적용돼 있고 이를 보고 작전을 명령하고 다시 메일에 세이브 파일을 담아 답장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한 번의 전투가 끝나기까지는 근 몇 달이 걸린다. 무척이나 지루할 것 같지만 이런 게임은 머리를 쓰는 게임에 열광하는 유저에게 엄청난 재미를 줬다. 게다가 역사적인 전투에 관한 고증도 완벽하게 재현돼 있고 일부 게임은 한국 전쟁도 등장시켜 화제가 되곤 했다. 하지만 역시 대중적 인기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에 편중돼 있으며 대표적으로 ‘커맨드 앤 컨쿼: 제너럴’ 등이 있다.
# 중세 전투는 새로운 대안
그러나 현대전은 너무 많이 다뤄져 식상한 면이 있다. ‘로마: 토탈 워’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라이즈 오브 네이션’ 등은 고대의 전투를 다루고 있으며 MS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와 ‘라이즈 오브 네이션’은 원시 시대부터 미래의 SF까지 총 망라한 게임이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로마: 토탈 워’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지만 턴 방식의 전략을 강하게 삽입해 기존의 게임들과 격을 달리한다. 고대 로마의 통일이 주제인 이 게임은 완벽한 고증을 통해 그 시대의 병사와 무기, 건물 등을 고스란히 살려냈고 동시에 통치의 개념까지 포함시켜 단순 전투 위주의 게임 방식을 벗어난 명작이다.
밀리터리의 개념을 조금 더 확대시키면 중국의 삼국지나 일본 전국시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등 많은 전쟁들을 포함시킬 수 있다. 역사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로도 분류되지만 고대나 중세 시대의 전쟁도 밀리터리의 한 부분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이나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등을 게임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게임에서 전투와 전쟁은 흔하디 흔한 소재지만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타이틀의 성격도 많이 달라진다. 무분별한 전투 액션 게임이 청소년에게 생명의 존엄성을 상실시킬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훌륭한 작품은 유저에게 감동을 주고 삶의 활력소가 되며 당시 전장의 치열한 상황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전문적인 지식도 익힐 수 있어 교육적 효과도 적지 않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