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플레잉이 게임 역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역할분담놀이라고 할 수 있는 롤플레잉은 캐릭터에 인격을 부여하고 자신만의 세계와 인생을 만들어 유저에게 새로운 삶을 제공했다. 이는 오늘날 게임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지금도 유효하다. 간단한 예로, ‘리니지’ 등의 MMORPG는 RPG에서 파생된 것이다.
‘울티마’로 폭발한 롤플레잉 게임의 인기는 D&D(Dungeons & Dragons, 가장 유명한 TRPG 룰)에 대한 유저들의 관심을 증폭시켰으며 ‘위저드리’와 함께 많은 게임과 개발자에게 영향을 줬다. 주사위로 테이블 보드 게임에서 행했던 롤플레잉을 게임으로 개발하는 일은 대단히 매력적인 작업이었고 그 중에 존 반 캐너헴은 매우 특별한 케이스다. ‘마이트 앤 매직’을 홀로 제작해 롤플레잉 게임의 저변을 확대했으며 시리즈를 더하면서 독특한 인터페이스와 게임 플레이로 유명세를 탔다.당시 PC는 지금의 핸드폰보다도 성능이 매우 떨어져 게임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게임 시스템과 그래픽이 한정됐고 ‘마이트 앤 매직’도 여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마이트 앤 매직 3’의 게임 플레이도 겉으로는 매우 단순하다.
파티원이 모험을 하다 몬스터를 만나면 ‘전투’와 ‘회피’를 선택할 수 있는데 전투를 시작하면 인공지능으로 파티원들이 알아서 싸운다. 회피를 하면 데미지는 없지만 경험치가 부족해 레벨이 올라가지 않는다.
이 모든 과정이 어떻게 구현되냐! 요즘처럼 3D 그래픽의 현란한 특수 효과를 기대하면 안된다. 화면에는 몬스터 그림이 딱 한장 걸리고 주변의 각 캐릭터 능력치 텍스트가 서서히 변한다. 그리고 갑자기 전투가 완료됐다며 메시지가 뜬다. 그리고 끝이다. 유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화면만 쳐다 볼 뿐이다.
길을 떠나 모험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템을 발견하면 화면에 그림 한장이 뜨고 아이템에 대한 설명이 표시되며 가질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물어본다. 지금의 3D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유저가 보면 ‘이것도 게임인가’ 싶을 정도지만 당시의 게임은 다 그랬고 그 중에서도 ‘마이트 앤 매직’은 방대한 맵과 큰 스케일의 규모로 인기를 끌었다.존 반 캐너헴은 ‘울티마’, ‘위저드리’ 등 롤플레잉 게임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D&D에 영향을 받아 결국 게임계에 몸을 던졌다. 1986년에 그는 하나의 게임을 완성하고 뉴 월드 컴퓨팅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마이트 앤 매직 북 1: 더 시크릿 오브 이너 생크텀(이하 마이트 앤 매직 1)’을 공개했다.
이 게임은 롤플레잉 게임 사상 최초로 실내와 실외를 구현하고 그 모두를 탐험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이었다. 이 타이틀은 곧바로 유명세를 탔으며 게임 관계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도대체 누가 이처럼 창조적인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었는지 궁금해했던 것이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존 반 캐너헴은 ‘마이트 앤 매직 2’를 만들었고 1992년에 ‘마이트 앤 매직 3’를 연달아 개발했다. 당시 개발자들은 ‘외로운 늑대(Alone Wolf)’로 불리우며 게임의 모든 것을 혼자 만들고 담당하는 일인체제였으나 컴퓨터의 발달은 게임 개발의 분업을 유도했고 존 반 캐너헴도 ‘마이트 앤 매직 3’부터 다른 개발자와 함께 작업을 했다.
이 게임은 위대한 업적을 기록했는데, 아이템이 하나 이상의 성격과 관계를 가지도록 하는 개념을 선보여 또 다시 개발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 게임부터 ‘마이트 앤 매직’은 전세계로 알려져 수출되기 시작했고 수많은 상을 받았다.‘마이트 앤 매직’ 4편과 5편은 1993년에 발표됐는데 혁명적인 시스템으로 유저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각각 별개의 타이틀이었지만 하드 디스크에 함께 설치하면 게임들이 연결되고 하나의 통합된 세계로 완성됐다.
4편과 5편이 묶이면서 하나의 게임으로 재탄생됐으며 추가로 퀘스트가 생성되고 새로운 던전도 생겨났다. 놀라운 일이었다. 컴퓨터 게임 역사상 시리즈를 하드 디스크에 동시에 깔았을 때 하나의 완성된 새로운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사례는 전혀 없었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였다.
‘마이트 앤 매직 6’는 1998년에 3D 그래픽으로 개발됐으나 최초로 시도한 3D 그래픽이라는 점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후 개발된 ‘마이트 앤 매직 7’은 권태에 빠진 개발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만든 게임이라는 악평으로 고전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리고 ‘마이트 앤 매직 8’는 매너리즘의 절정에 달해 6편과 같은 엔진으로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 내 유저들이 외면하고 말았다. 이제 이 위대한 시리즈도 종말을 고하고 뉴 월드 컴퓨팅도 한물 갔다는 평을 들었지만 존 반 캐너헴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롤플레잉에 전략을 접목시키는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켜 분대를 컨트롤할 수 있는 ‘히어로즈 마이트 앤 매직’을 만들어 부활했다. 이 작품은 ‘마이트 앤 매직’의 정통 롤플레잉에 전투 전략을 도입, 빠르고 강한 액션과 화려한 그래픽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타이틀이었다.‘마이트 앤 매직’은 현재 9편까지 나왔으며 ‘히어로즈 마이트 앤 매직’은 5편까지 출시됐다. 최초의 명성에 비해 많이 퇴색된 면도 적지 않지만 롤플레잉계에서 누구도 무시못할 존재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 장르를 좋아하는 소수의 유저에게 중요한 관심의 대상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게임과 유사 게임들이 세운 정통 롤플레잉의 힘은 블리자드가 ‘디아블로’를 공개하기 전까지 대단한 위력을 떨쳤으나 유저들의 취향이 빠르고 가벼운 장르로 선회함에 따라 서서히 주류에서 잊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MMORPG의 기반과 토대는 롤플레잉(RPG)이며 롤플레잉을 모르고 MMORPG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마이트 앤 매직’은 롤플레잉계의 기둥이며 초석을 마련한 위대한 게임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