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박스라이브 `눈먼 돈` 노린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자동갱신’이라는 부당한 요금결제 약관을 이용해 X박스 라이브 이용료를 고객도 모르는 사이 마구잡이로 결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MS는 프로모션 일환으로 X박스 라이브의 무료 이용권을 남발하고, 무료 이용기간이 끝나면 이전에 입력한 신용카드 번호로 이용료를 선불로 거둬가 피해자들이 얄팍한 상술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현재 MS는 자동결제에 앞서 e메일로 갱신여부를 묻고 있다고 밝히지만, 고지 e메일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등 피해자는 속출하고 있다.

X박스 라이브 사용을 중단한 소비자 가운데 상당수는 사용료가 자동으로 결제됐지만, 돈이 빠져나간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으로 보여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 자동결제 피해 사례 속출

회사원 L씨(31·서울 관악구)는 최근 신용카드 명세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MS가 전혀 사용하지 않은 X박스 라이브 이용료 명목으로 자신의 동의없이 6만원을 결제해 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L씨는 지난해 10월 X박스의 온라인 서비스인 ‘라이브’ 출시에 맞춰 스타트 키트를 구매하고, 스타트 키트에 포함된 1년 무료 이용권으로 X박스 라이브 게임을 몇차례 즐겼지만 시간이 없어 10개월 넘게 사용을 중단한 상태였다.

L씨는 부랴부랴 한국MS 고객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지만, MS측은 약관의 이용료 자동갱신 조항이 있어 자동결제는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X박스 라이브를 시작하기전 장문의 이용약관에는 무료 쿠폰이든, 유료 결제든 일단 라이브에 접속하고 이용기간이 지나기전 가입 취소를 통보하지 않으면 회원가입시 기재한 신용카드 번호로 자동결제되도록 돼 있다는 것.

L씨는 세계적인 IT기업인 MS가 사전 고지도 없이 함부로 결제해도 되냐고 따졌지만, 상담원은 e메일로 고지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결국 L씨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한달 이용료 6900원을 지불하고, 5만3100원을 환불받는데 만족해야 했다.

X박스 라이브의 ‘이용료 자동갱신’이라는 부당한 약관 때문에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더게임스’에는 L씨를 비롯해 10여명의 소비자들이 전화와 e메일로 피해사례를 고발해온 상태다. 또 루리웹·엑스박스매거진 등 콘솔게임 전문 웹진 게시판에도 비슷한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MS 고객지원센터 관계자도 “이달 들어 자동결제와 관련된 문의전화가 폭주하고 있다”며 “미국 본사에 이를 보고한 상태”라며 자동결제 피해사례를 확인해줬다.

그동안 잠잠하던 자동갱신 약관 문제가 최근들어 급부상한 것은 X박스 라이브에 접속하기 위해 꼭 필요한 주변기기 ‘스타트 키트’를 구매하면 1년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스타트키트’가 출시된 이후 만 1년이 지나면서 가입을 취소하지 않은 고객들이 자동결제 약관에 적용을 받고 있다.

현재 국내 X박스 라이브 가입자는 4만여명선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자동결제로 인한 국내 피해자는 적어도 수천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신용카드 명세서를 꼼꼼히 챙겨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보여 피해를 당한 사실조차 모르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자동갱신’ 무엇이 문제인가

MS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이미 이용약관에 명시돼 있는데다 이용자들이 라이브 접속에 앞서 이미 동의한 사안이라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실제로 X박스 라이브 이용약관 5조4항에는 ‘가입자는 가입을 취소하지 않는 한 자동적, 연속적으로 갱신된다’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X박스 이용약관은 무려 원고지 124매에 달하는 장문으로 구성돼 있는데다 대부분 번역투의 어려운 문장이어서 많은 소비자들이 꼼꼼히 읽어보지 않고 지나칠 개연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MS의 자동결제 시스템은 1개월 또는 1년치 이용료를 미리 결제하는 선불제인데다 소비자의 구매의사를 타진하는 시스템이 취약해 피해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MS는 현재 자동결제 여부를 소비자들이 라이브 서버에 등록한 e메일로 발송하고 있다. 반면 가입을 취소할 때는 호주에 있는 MS 고객지원센터에 소비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야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약관을 모르는 사람은 e메일을 받지 못하거나 확인하지 못하면 자동결제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전 고지없이 자동결제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MS 관계자는 이에 대해 “e메일은 이용기간이 종료되기전 일주일이나 10일전에 통보된다”며 “X박스 라이브에 등록된 e메일 주소가 바뀌었지만 수정하지 않는다면 이전 주소로 발송돼 고지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X박스 라이브의 자동갱신 약관과 관련해 불공정행위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공산품팀 오경인 과장은 “현재 일정 기간마다 결제가 필요한 상품 가운데 자동으로 갱신되는 상품은 거의 없다”며 “소비자 피해가 접수되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부당 여부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소보원 조사에 따르면 이용료를 둘러싸고 소비자 분쟁이 비일비재한 성인 인터넷사이트의 경우에도 이용료 자동갱신 약관을 명시한 곳은 한군데도 없는 실정이다.

# MS, 이미지 타격 불보듯

‘더게임스’가 X박스 라이브 자동결재와 관련해 취재에 나서자 MS측은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한국MS 관계자는 “호주 고객지원센터는 물론 미국 본사에도 보고서를 올렸다”며 “아직 뚜렷한 입장이 나오지 않았지만 머지 않아 개선책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용료 결제시스템은 전세계적으로 동일하게 도입되는 만큼 자동결제 시스템은 유지하되 사전 고지를 통한 본인 의사확인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선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세계적인 IT기업인 MS가 ‘자동갱신’이라는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약관을 고집하는 것에 납득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MS가 X박스 라이브 프로모션을 강화하면서 스타트 키트와 게임 타이틀을 구매하면 1년이나 2개월 무료 이용권을 배포하는 것도 치밀하게 계산된 상혼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자동결제로 피해를 입은 K씨(29)는 “무료로 이용하라고 해놓고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요금을 빼가는 것은 일종의 사기 상술이나 다름없다”며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IT기업이 이렇게 투명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비판했다.

<장지영기자 장지영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