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지금만 같으면 살 맛 나겠습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물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때지만, 이렇게 재고가 많다 보니 대기업 임원도 다 찾아오네요.” (A사 CEO)
“지금 상태라면 1000억원 넘기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외국에서 물건 달라고 성화거든요. 문제는 은행 신용한도 때문에 물량을 조절하는 것뿐이죠.” (B사 CEO)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이자, 수출 주력품목 중 하나인 디지털TV(DTV)업계가 성장에 날개를 달았다.
수출업종에 환율 비상이 떨어졌지만, 원가의 70∼80%에 달하는 패널을 달러로 결제하고 수출대금도 유로달러나 달러로 받기 때문에 환율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비켜 있는 편이다.
LCD, PDP 패널을 제외한 다른 부품도 달러로 결제하는 방법을 검토중이다. 이렇게 되면 부품 조달에서부터 수출까지 달러로 결제가 이뤄지는 것으로 원화 환전시 환율이 문제지만, ‘운용의 묘’를 발휘하면 해결되는 사안이다. 또 패널 재고량이 넘치다 보니 가격 협상도 자유로워 중소·중견 DTV업계는 어느 때보다 발걸음이 가볍다.
◇수출 활기=이레전자는 작년 3분기 해외 수출실적(휴대폰 부문 20% 포함)이 139억원, 4분기 303억원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각각 245억원, 47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덱트론도 지난해 DTV 부문 매출이 20억원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25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250억원 가운데 210억원이 수출이다.
디보스도 올해 ‘5000만달러 수출탑’을 받을 전망이며, 우성넥스티어는 지난 10월에만 PDP와 LCD TV에서 650만달러 가량 수출실적을 거뒀다. 우성넥스티어의 경우 스위스 스카이미디어와 20인치 완제품 LCD TV 4000대와 반제품 6000대를 220만달러 규모로 계약한 데, 이어 현대종합상사를 통해서도 약 174만달러 규모의 PDP TV를 판매하는 등 수출 효자품목으로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비행기까지 동원=DTV의 최대 성수기는 단연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계절성’ 상품답게 여름에 비수기로 접어들었다가 크리스마스까지 상승곡선이다.
이 때문에 국내 DTV업계 수출도 10월이 피크다. 성수기 시즌에 맞추려면 최소 한 달 전인 10월에는 계약을 하고, 선적해야 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주문이 계속 몰려 비행기까지 동원해야 할 판이다. TV업계에서 비행기 동원은 이례적인 경우. 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비행기 화물 예약이 모두 완료돼 있어 호락호락하지 않은 탓이다. 웃돈을 주고라도 전용기를 빌리거나, 비행기 화물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덱트론 오충기 사장은 “컨테이너 네개 정도를 보내야 하는데, 비행기 화물이 모두 매진된 상태”라며 “날짜를 맞추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비행기 화물칸이나 전용기라도 이용해야지 어쩌겠느냐”며 행복한 고민이다.
◇패널 공급과잉으로 갑을관계 바뀌어=패널이 부족하던 올 초까지만 해도 중소·중견회사들은 패널 공급사를 쫓아다니며 통사정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최근 재고물량이 남아돌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패널을 제조하는 대기업 임원들이 직접 찾아와 ‘패널을 사용해 달라’며 ‘프리미엄’까지 제시하는가 하면, 40인치 대형 DTV의 경우 표준화 경쟁까지 가세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단적인 예로 LG필립스LCD는 5∼6개 TV제조사에 백커버(뒷 금형) 제작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중이고, 삼성전자도 5억원에 달하는 금형비 지원을 암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0인치 LCD 패널을 경쟁사인 37인치 가격(available price)에 준해서 주겠다는 것도 이미 공식화된 얘기다.
디스플레이뱅크에 따르면 올해 4분기 LCD패널 공급과잉능력은 16.5%, 올해 전체적으로는 10.2%에 이를 전망이다. 수급조정으로 공급과잉능력은 5% 미만까지 줄겠지만, 반대로 패널 제조사들이 대량양산정책으로 ‘규모의 경제’를 도모할 가능성도 높다. 이렇게 되면 공급과잉 문제는 쉽게 개선되기 힘들어 DTV업체들의 ‘호시절’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정은아기자@전자신문, ea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