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한국게임제작협회 탄생
‘대한민국 산업포장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92년 11월 30일은 필자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날 중의 하나다.
현재 필자가 몸담고 있는 그라비티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외화 규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다 하겠지만 92년 당시로서는 1000만 달러 수출은 엄청난 금액이었다. 수상소감을 묻는 모 신문사의 기자에게 필자는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부터 1000만 달러 수출이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품을 만들 때마다 이 제품이 내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제품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정성을 들여 만들었을 뿐인데 큰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후 필자에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게임업계의 인사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치열한 해외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업계가 일정부분 협력할 필요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취지를 살려나가기 위해서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조율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필자는 유력인사들의 뜻을 모아 ‘사단법인 게임제작자협회’를 발족시키기 위해 정부에 허가를 신청했다.
지금이야 게임이 당당한 산업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93년 당시로서는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미흡하던 때였다. 하지만 필자의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정부로부터 제1호로 한국 최초 게임제작협회의 출범 허가를 받아냈다.
게임제작자협회를 출범시킨 다음으로 필자가 힘썼던 일은 한국에도 국제적인 게임전시회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게임제작자협회 임직원들과 일본, 미국, 유럽 등지의 해외게임전시회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안의 분위기는 언제나처럼 밝지만은 않았는데, 그것은 고단한 일정에서 오는 피로감과 함께 느껴지는 그들 주최국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었다.
그런 부러움에서 태동한 것이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대한민국게임대전(KAMEX)’의 전신인 ‘어뮤즈월드-게임엑스포’다. 부러워만 하지말고 우리나라에도 해외의 바이어가 찾아오는 국제적인 규모의 게임전시회를 만들기 위해 95년 한해 동안 내 시간을 몽땅 쏟아 부었다. 드디어 95년 12월 국제게임전시회가 코엑스에서 ‘어뮤즈월드-게임엑스포’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현재 국내에는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첨단게임산업협회 등 10여 개가 넘는 협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게임쇼, 한국국제엔터테인먼트산업전시회 등 한해 동안 열리는 게임전시회 또한 10여 개에 이른다. 이런면에서도 한국은 가히 게임강국이라 불릴 만 하다. 12년 전 한국에서 처음으로 게임관련 협회를 출범시키고 10년 전 국내 최초로 국제전시회를 개최했던 필자로서도 이렇게까지 이 분야가 양적으로 발전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90년대 초반 사회적 공감대도 주무 부처도 없었던 황무지 같았던 시기에 이 분야에서 첫 삽을 떴다는 사실에 자그마한 자부심을 느끼면서 부디 이 분야가 양적인 팽창 못지 않게 질적으로도 성장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게임강국의 견인차가 되기를 업계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kimjr54@gravit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