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프로레슬링. 최근에는 K-1 등 이종격투기가 높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단연 앞선다. 그 중에서 WWE의 인기가 가장 높다.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를 표방하는 - 실제 격투는 아니지만 화려함과 선수간의 다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 라인을 추가한 - 문화 콘텐츠로서 가치가 높은 스포츠다.
그런 WWE의 인기에 힘입어 그 동안 다양한 관련 게임들이 발매되었고 개발 중이다. 하지만 ‘WWE 스맥다운!’ 시리즈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적어도 이 시리즈가 발매된 이후 WWE 관련 작품 중에서 이보다 높은 인기를 얻은 타이틀은 없었다. 그 범위를 ‘레슬링 게임’으로 확대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프로레슬링 게임을 살펴보면 기본적인 게임성이 대전 액션게임과 매우 흡사하다. 대부분의 경기가 일대일 이뤄지며 가끔 이대일이나 일대이 등 다수 인원의 경기가 펼쳐진다. 덕분에 캐릭터의 모델링과 모션의 자연스러움, 화려함, 타격감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WWE 스맥다운!’ 시리즈는 이런 요소들은 첫 작품부터 완성시켰다. 여기에 빠른 템포와 화려한 액션으로 무장한 이 타이틀은 WWE의 프로레슬링 특징과 잘 맞아 떨어져 큰 반응을 일으켰고 그 호응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 프로레슬링 게임의 경향을 보면 타 프로레슬링 게임들이 ‘WWE 스맥다운!’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WWE 스맥다운!’은 대전 액션과 스포츠 두 장르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게임이 프로레슬링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으며 이런 게임성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제작사가 유크스였기 때문이다.
‘미래의 미디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일본의 게임 메이커 유크스. 지금은 ‘스맥다운!’ 시리즈로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사실 과거에는 그리 유명한 회사가 아니었다. ‘스맥다운!’ 전의 작품 리스트를 살펴보면 딱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3D 프로레슬링 게임’과 ‘액션’이다. ‘투혼열전’이라는 일본 프로레슬링을 기반으로 한 3D 프로레슬링 게임 시리즈를 계속 만들어왔으며 스퀘어를 통해 발매했던 수작 액션 RPG ‘쌍계의’나 최근 국내에도 발매돼 좋은 반응을 얻었던 ‘베르세르크’ 등에서 남다른 액션 감각을 발휘했다.
‘WWE 스맥다운!’ 시리즈의 뛰어난 시스템은 유크스가 이 게임을 제작하기 전에 이미 개발했던 8개나 되는 3D 프로레슬링 게임에서 거의 완성돼 있었고 그 외의 작품들도 강한 액션을 지닌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두 장르에 대한 개발 경험과 노하우 등이 기본 바탕을 이뤘고 WWE의 게임 판권을 취득해 만들어진 게임이 바로 ‘WWE 스맥다운!’ 인 것이다.재미있는 점은 WWE의 게임 판권을 갖고 있던 유통사 THQ의 전략이다. 세계적으로 5위 안에 드는 대형 게임 유통사인 THQ는 중요한 자산인 WWE의 게임 판권을 구체화해 줄 게임 메이커로서 뛰어난 제작사를 선택하는 탁월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한 게임을 발매할 때 하나의 게임을 여러 기종으로 발매하는 것이 보통인 게임계에서 플랫폼별로 서로 다른 게임 개발사를 선정해 각각 다른 게임을 만들게 했던 사실은 매우 특별한 차별화 정책이다.
예를 들어, 과거 닌텐도64 버전은 AKI(레슬링 게임에 일가견이 있는 일본 제작사 중의 하나)에게, 그리고 PS12 버전은 유크스에게 ‘WWE 스맥다운!’ 시리즈를 맡겼다. 그리고 이후 X 박스 버전은 앤코어(Anchor)라는 곳에 개발을 맡겨 ‘WWE RAW’ 시리즈를 제작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매우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보일 수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매년 시리즈가 나오는 스포츠 게임의 특성상 어떤 타이틀이 인기 시리즈가 되는 경우 개발사가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거나 게임을 갈고 닦는데 게을러질 가능성도 높다. 그런 장르의 특성은 THQ의 비효율적인 시스템과 맞물려 제작사간의 경쟁을 불러 일으켜 이런 가능성을 줄이고 각 시리즈의 완성도를 채찍질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쟁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WWE 스맥다운!’이다.WWE의 경기는 록 콘서트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각 선수마다 열광적인 팬이 있고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열광한다. 선수들은 특유의 말버릇이 있으며 팬들은 그 말을 똑같이 따라하면서 즐거움을 찾는다.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라는 특이한 성격을 표방한다.
‘WWE 스맥다운!’ 시리즈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을 잘 이해하고 팬들이 어떤 부분에서 WWE의 재미를 찾고 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게임이다. 선수 한명의 모습과 기술, 특유의 동작까지 최대한 유사하게 재현하고 그들의 습관을 게임에 녹여 넣는 노력은 WWE에 대한 이해가 바탕에 깔려있지 않으면 쉽게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유크스의 제작팀은 모두 WWE에 광적인 팬이다. 그렇게 WWE의 매력과 진수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WWE 스맥다운!’ 시리즈가 프로레슬링 게임으로서 완벽한 작품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분명 개선될 여지가 많다. 특히 액션 게임만을 주력으로 만드는 유크스이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 약점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2000년 초 첫번째 작품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총 6편의 작품이 발매된 이 시리즈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매년 같은 소재과 같은 스타일의 게임을 만들면서 눈에 띄는 변화를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크스는 해내고 있다. 이런 모습 덕분에 팬들은 다음 시리즈를 실망하지 않고 기다린다. 최근 발매된 6번째 시리즈인 ‘스맥다운! Vs. 로우’에서도 이런 부분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훌륭한 게임성과 매년 발전하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이 시리즈의 팬들은 더욱 열광하는 것이다.
<이광섭 월간플레이스테이션기자 dio@gamer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