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김정률 그라비티 회장(5)

 (5)온라인게임 불모지 일본 공략

 한국인이라면 은연중에 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정서가 있다. 축구든 권투든 한·일전 만큼은 꼭 이겨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어려서 일본 유학을 경험한 필자로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대만·중국에서 ‘라그나로크 온라인’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일본 게임과 한판 붙어보고 싶은 욕구가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게임시장의 장벽은 만만치 않아 보였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이 한국에서 공개된 2002년만 해도 일본은 한국과 달리 인터넷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미비해서 온라인게임을 접해본 일본인이 거의 없었다. 대다수 일본인들은 콘솔게임 이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했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게임회사를 대상으로 수입의사를 조심스럽게 타진해보았다.

 그 중 한 회사의 임원이 “일본 유저의 특성상 온라인게임은 절대로 상용화에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가능은 없는 법. 한국의 그 누구도 일본에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한국형 온라인게임의 상용화를 위해 일본 내 파트너사로 한국계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계열의 ‘겅호엔터테인먼트’를 선택했다.

 2002년 도쿄게임쇼를 기점으로 오픈 베타 서비스와 대대적인 마케팅을 시작하기로 양사가 결정했다. 도쿄게임쇼에서 당당하게 선을 보일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보기 위해 몰려들 일본인들을 상상하며 도쿄로 향했다. 그러나 손정의 회장 측이 나를 안내한 겅호의 부스에는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광고하는 포스터만이 즐비할 뿐 정작 게임은 실행되지 않고 있었다. 진행상의 부주의로 행사장 부스까지 인터넷이 연결되지 못한 것이었다.

 인쇄광고물 만으로 온라인 게임에 생소한 일본인들에게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매력을 보여준다는 것은 누란지석이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길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귀국 3일째 되는 날 손정의 회장의 동생인 손태정 사장을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 주제는 물론 온라인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에게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매력을 알리는 마케팅 안의 도출이었다.

 40일 만에 연락이 왔다. 대규모 마케팅을 집행할 터이니 일본을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공항에서 직접 필자를 맞이한 손 사장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호텔이 아닌, 도쿄시내로 차를 몰았다. 신주쿠 한 복판에 차를 세우고 손사장과 필자는 대형건물 옥상에 설치되어있는 대형전광판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 때 손사장이 소리쳤다. “아, 나온다!” 전광판에는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플레이동영상과 스크린샷이 화려하게 넘실대고 있었다. 현재 일본에는 280만명의 ‘라그나로크 온라인’ 회원이 있다. 이들은 매년 ‘라그나로크 페스티벌’이라는 대규모 이벤트를 자발적으로 벌이고 있으며 게임에서 파생된 100여종의 캐릭터를 구매하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게임/애니메이션 강국으로 그 동안 한국을 앞질러 왔다. 하지만 라그나로크가 그 판도를 역전시켰다.”

 필자는 지난해 TV도쿄의 ‘라그나로크 디 애니메이션’ 방영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라그나로크 온라인이 일본에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로 일본에서 한국형 온라인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kimjr@gravit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