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훈의 중계석]당신들이 모르는 한국 프로게임리그의 비밀들-11

게임리그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결승전이다. 수 만명의 관객이 만들어 내는 그 특유의 분위기는 세계 어느나라에도 전형이 없는 한국 e스포츠의 상징이며,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그 멋진 결승 이벤트가 만들어지기까지 우여 곡절을 겪었을 것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할 바. 그 이면에는 맛있는 안주거리로 삼을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있다.

최초의 게임리그 결승 이벤트는 2000년 가을,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이다. 훗날 혹자는 그 이벤트를 놓고 ‘게임 따위에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낭비를 한다’고 필자를 비난했지만, 기실 첫 결승 이벤트에 들어간 예산은 불과 3000여만원이다. 이벤트 한 번에 억대를 넘어가는 최근의 결승전과 비교하면, 5분의 1도 들어가지 않은 그야말로 ‘동네잔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동네잔치는 열성적인 팬들의 호응으로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오늘날의 결승 이벤트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게임리그 이벤트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은 그 다음 다음 시즌에 열렸던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였다. 그 전까지의 관중동원 기록은 1000여명. 총 객석 3500석의 세종대학교 대양홀을 결승 장소로 선택한 필자에게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1000명과 3000명은 세배 차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렇지만 필자의 고집은 보기좋게 성공을 거두었다.

전문가들을 정말 경악시킨 것은 그 다음 시즌 ‘코카콜라배 스타리그’였다. 필자는 다시 1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장충체육관을 장소로 선택했다. 이번엔 ‘미친놈’ 소리가 오고 갔다. 당시로서는 1만명의 관객이 게임리그를 보러 온다는 것은 상상을 불허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게임리그 마니아들은 잘 알것이다. 그 결승전이 얼마나 감동적으로 치러졌는지를….

여기까지 난관이 있어도 고집스레 뚫고 나온 필자가 기어코 무릎을 꿇은 것은 그 다음 시즌의 결승전이었다. 필자가 다음 시즌의 결승전으로 생각한 날은 12월 31일 자정. 장소는 정동진이었다. 정동진에 특설 무대를 세워놓고 12월 31일 자정, 즉 2002년 1월 1일 0시에 대회를 시작하자는 기획이었다.

그것도 지금까지처럼 결승전만 덜렁 치르지 말고 축제와 이벤트를 구성해서 오전 일곱시까지 강행군을 진행하는 기획이었다. 필자의 생각은 2002년의 첫날, 한국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에서 결승전을 진행하고 새해의 첫 태양을 바라보면서 한국 e스포츠의 르네상스를 선언하자는 것이었다. 관객을 수송할 방안으로 서울 곳곳에서 출발하는 관광버스를 준비하고, 철도청에 특별 열차를 의뢰했다.

그러나, 필자는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쳐 이 기획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시즌의 결승은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장충 체육관에서 열렸다. 나쁘진 않았다. 필자가 고집을 꺾은 것은 담당 PD의 설득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으니 한번쯤 쉬었다 가도 괜찮다’라는 것이었다. 옳은 이야기었다. 그러나, 필자는 생각한다. 한번도 쉬지 않고 전진을 계속하던 한국 e스포츠가 처음으로 제자리 걸음을 했던 그 대회에 그 때 그 기획이 실현되었더라면 지금쯤 한국 e스포츠는 다음 대회 결승전으로 어디를 생각하고 있을까를.

<게임케스터 nouncer@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