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공부한다? 교육용 게임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들어 일반 게임을 교재로 채택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2000년초 일부 대학에서 게임을 부교재로 사용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게임을 교재로 한 정규 강의를 개설하는 대학까지 생겨났다.
지난해 중앙대 경영학과 위정현 교수는 2학기에 온라인게임 ‘거상’을 이용한 ‘콘텐츠 비즈니스 경영전략’이라는 경영학 강좌를 개설했다. 온라인게임을 교재로 한 정규과목으로는 처음. 이 수업은 팀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학생들은 3~4명이 한 팀을 만들어 직접 게임을 하면서 주어진 퀘스트(과제)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해 각 팀 전략에 따라 재산, 레벨, 신용도 등이 달라진다. 강의 후 평가는 어느 팀이 얼마나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무역을 하느냐에 따라 점수가 매겨졌다. 학생들은 주어진 과제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수행했는지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해 최종 평가를 받았다. 수업의 대부분이 게임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 학교는 올해에도 마찬가지로 온라인게임 ‘군주’로 진행하는 ‘디지털경영론’ 강좌를 열었다.
위 교수는 “게임에 교육기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를 수업에 접목하면 큰 효과가 있으리라 봤다”며 “실제 해보니 효과가 있어 3학기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게임을 교재로 했다고 해서 즐기고 노는 수업이 아니다”며 “학생들이 퀘스트를 수행하는 데 급급하지만 나중에는 전략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훈련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위 교수의 강의를 수강했거나 수강하고 있는 학생은 모두 120여명.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수강신청 인원이 항상 넘치지만 학생들이 많을 경우, 수업 진행에 차질이 예상돼 인원수를 2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올해에는 서울대 경영대학원이 이에 가세했다. 이 대학원은 위 교수의 강의가 효과가 크다고 판단 위 교수를 초빙해 ‘순기술 및 정보기술특강’ 과목을 개설하고 교재로 온라인게임 ‘군주’를 채택했다. 수업 방식은 마찬가지로 3~4명의 팀이 제한시간 내에 퀘스트를 완수하고 이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연세대 경영학과 김동훈 교수는 올해 2학기에 글로벌 화장품기업 로레알그룹의 온라인 경영전략 게임인 ‘e스트래트 챌린지’를 교재로 삼은 마케팅전략 과목을 개설, 66명이 이를 수강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 게임을 통해 글로벌 화장품회사인 ‘프리마’를 직접 경영해 성과를 견주면서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을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간접 기회를 얻게 된다.
로레알코리아 인사부 이동준씨는 “게임을 실제 학교 커리큘럼에 맞춰 조절했다”며 “학생들은 게임을 통해 여러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들이 재미있고 많이 배운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연대 외에도 2개 학교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 내년에는 다른 학교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환경을 마음대로 구현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앞으로 게임을 교재로 삼는 대학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가장 유명한 게임이 1989년 도시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인 ‘심시티’. 국내외 대학에서 단골로 교재로 활용된 게임으로 게이머는 시장이 돼 황무지를 개척, 도시로 건설해야 한다. 주택가 공업·상업지대를 적절히 배치해 시민들이 많이 살도록 유도하는 것이 포인트.
이에 못지 않게 유명한 게임이 유비소프트(Ubisoft)의 ‘캐피탈리즘2’. 국내 대학에서도 경영학과 부교재로 많이 이용했으며 연대와 고대가 이 게임으로 학교대항 대회를 열기도 했다. 쉬운 인터페이스를 통해 자본주의의 기본개념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게임.
국산 게임으로는 지난 2000년 부산외국어대 경영정보학과가 시뮬레이션 과목 부교재로 채택한 감마니아의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인 ‘패스트푸드’가 잘 알려졌다. 이 게임은 소점포 경영시스템를 비교적 잘 구현했으며 인기가수 핑클을 앞세운 깜직한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재미 때문에 좋은 평을 얻었다.
이듬해 출시된 KS미디어의 교통시뮬레이션 게임인 ‘트래픽시티’는 안양대 도시정보공학과의 부교재로 채택된 게임. 교통공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임으로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제어하고 관리하는 게 게임의 목표다.
<황도연기자 황도연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