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내전이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서로 대치한 보스니아계와 세르비아계가 각각 그들의 총구를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에게도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믿고 있는 종교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다고 상대의 씨를 말리기 위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부녀자와 그 어린 아이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는 것은 너무나 비열한 짓이었다. 보스니아 내전을 소재로 한 ‘언더그라운드’나 ‘율리시즈의 시선’ ‘비포 더 레인’ 등 뛰어난 영화들에는 예외 없이 이 비극적 전쟁의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과 칸느영화제 각본상 등을 수상한 ‘노맨스 랜드’는 보스니아 내전을 소재로 한 유쾌한 블랙 코미디다. 마지막 비극이 터지기 전까지 우리는 부비트랩을 깔고 누운 남자와 그 주변에서 서로 총을 겨누는 양쪽의 두 병사가 빚어내는 코미디에 마음껏 웃음을 터트린다.
우리나라의 비무장 지대처럼 양쪽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그 중간지대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두 병사들 때문에 UN이 개입하고 기자들이 출동한다. 문제 해결 그 자체보다는 카메라를 더 의식하는 UN군 책임자, 두 병사의 안전보다는 상대에 대한 증오심에 가득 찬 양쪽 군인들, 결국 비극은 터질 수밖에 없다.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의 ‘노맨스 랜드’는 단순하다. 그리고 아주 복잡하다. 이야기의 뼈대 자체는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는 것처럼 단순하지만 그것이 본질적으로 껴안고 있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복잡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중간지대의 움푹 파인 참호 안에서 서로 자신의 진지를 향해 구조의 손길을 내미는 두 병사와 조금만 움직여도 폭탄이 터질 것 같은 부비트랩 위의 병사가 모두 안전하게 목숨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중립지대에 도착한 UN에 희망을 걸어 보지만 그들은 무사안일주의다. 어떤 문제도 일으키기 싫어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지휘관은 기자들의 TV 카메라 앞에서는 화려한 수식어로 듣기 좋은 미사여구를 남발하지만 실제로는 병사들의 생명 같은 것은 조금도 관심이 없다. 이 해결하기 어려운 골치 아픈 상황을 빨리 빠져나가려고만 한다. 눈가림으로 상황을 수습하고 철수해 버린 뒤에는 다시 처음과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양쪽 진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인간의 생명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병사만큼은 구해야겠다는 의지 같은 것은 추호도 찾아볼 수 없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위기의 상황 속에서, 서로 총을 겨누는 두 병사는 이제 통성명도 하고 인간적 체취를 맡기도 한다. 알고 보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한 동네 친구들일 수도 있고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을 때 그들 스스로가 서로를 믿어야 하지만 그 믿음이 확신으로 변하기에는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순간, 인간적 신뢰가 깨지는 순간에 비극은 찾아온다.
도대체 왜 이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어야 하는지 애초의 이유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비극의 전쟁, 아무도 그들의 무사한 귀환에 관심을 갖지 않는 상태에서 세 병사의 운명은 이미 예정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웃음이 울음으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전쟁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와 인간이 왜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천둥 벼락처럼 깨닫는다. ‘노맨스 랜드’는 바로 그 불꽃지점을 향해 화약을 숨기고 질주한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