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칼럼]운 없는 여자

행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유난히 운이 좋아서 하는 일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 보기도 했다. ‘운이 좋은 편이죠’라고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대신하는 경우도 여럿 보았으니까.

발레리나 출신으로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게임회사를 다니던 내가 어느 날 몇 백억대 갑부로 등극한 사실을 놓고 사람들은 때로 ‘운이 좋은 여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나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나쁠까’쪽으로 무게를 두는 입장이었다. 이렇듯 정말 운이 없는 여자라고 나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지만, 실은 그것 때문에 바로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생각도 하고 있으니 그리 나쁠 것은 없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는 게 나의 기억이다. 한 가지 일에 정착하지 못했고. ‘대체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다른 곳을 기웃거리며 살았다. 겉으로는 똑똑하고 강한 척했지만 실은 실망도 많은 편이었고, 어려운 상황이 수시로 닥쳤기 때문에 굴복해야 할 것인지, 헤쳐 가야 할 것인지를 마음 안에서 분주하게 논의한 편이다. 그러니 내가 대단히 운이 좋은 여자라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말이다.

코스닥 등록 직전, 웹젠이 한창 상승 가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던 무렵이었다. 너무 잘 풀리고 있는 것에 스스로 놀라고 있던 그 무렵에 ‘아시아를 움직인 경제인’에 추천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외국에서 흔히들 한국 경제에는 얼굴마담, 즉 스타가 없다고 말해지는 게 현실이었다. 기분 좋은 평가였다. 하지만 추천을 받고도 응할 수 없었다. 그 즈음 웹젠을 사임하는 사태가 빚어졌기 때문이다.

그 후 각국의 역량 있는 기업들이 한데 모이는 사업설명회에 초청 받은 적이 있다. 웬만한 사업에 대한 발표 때 졸거나 딴청을 부리던 사람들이 ‘뮤’를 전제로 게임에 대해 설명한 내게 가장 질문을 많이 했고,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내게 ‘한국의 IT산업, 그리고 게임 산업의 선봉에 서서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비전을 보여 준 사업가로 오래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기도 했다.

재벌비리 등으로 나쁜 편견을 갖게 된 외국인들의 한국 기업이미지를 보다 젊고 깨끗한 쪽으로 바꿔 놓는데 한몫 담당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므로 나는 떼돈을 버는 일보다 진취적인 기업인으로 사는 쪽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노력에 비해 운이 없는 편이라는 내 생각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늘 새로운 것을 쫓아다녔고, 기회를 잡았으며, 눈물겨울 만큼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끝까지 내 것으로 이뤄 내지 못한 일이 많았으니까.

돈에 대한 운? 대박운? 글쎄. 이 부분에서 여전히 운이 나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역시 ‘운’보다는 ‘노력’과 ‘판단’의 결과라고 믿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앞으로도 나는 ‘운이 없는 여자’로 살기를 자청한다. 운이 없어서 질기게 노력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하늘의 도움이 아닌 내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을 향해 가는, 그런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져서다. 그러므로 나는 운이 없음에 감사하고, 또 그래서 행복하다.

<이젠 사장 saralee@e-ze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