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열전]열림기술

*`한국의 3M` 꿈꾸는 수출 역군

기자가 열림기술을 처음 만난 것은 96년 후반이었다.

 창업한 지 10개월이 안된 열림기술은 그야말로 햇병아리였다. SI, 멀티미디어 콘텐츠 등 이것저것 사업을 벌이면서도 꽤 매출을 올리던 겁없는 벤처기업이었다.

 김희수 열림기술 사장은 특이했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 하며, 안경 너머로 불쑥 던지는 말에 두려움이 없었다. 창업 초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도 있을 법했지만 그에게는 없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만만했고 사업을 즐기고 있었다.

 대우통신, 나우기술 출신 30대 중반의 벤처기업가에게서 기자는 ‘사람’을 느꼈다. 그를 처음 만난 장소는 열림기술이 있는 여의도 사무실이 아니라 대덕연구단지 어느 허름한 삼겹살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주 맛이 참 좋았다.

 술잔이 한순배쯤 돌았을 때 마시던 술잔을 기자에게 건네며 불쑥 “3M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그가 원하는 ‘3M’이라는 회사는 ‘포스트잇’이라는 재치로 무장하고, 다양한 제품군을 쏟아내는 그런 회사였다. 다양성과 아이디어가 접목된 벤처기업, 그가 그리는 기업 이미지였다.

 이제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벤처기업가는 삼겹살을 안주 삼아 ‘3M’ 같은 회사를 그리고 있었다. ‘매출을 어떻게 올릴까, 무엇으로 먹고 살까’ 하는 고민이 아니라, ‘나는 이런 미래가 있으니 마음에 들면 너도 나 좋아해라’ 하는 식으로 당당했다.

 열림기술은 창업 1년도 안 돼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무기라고는 친구들이 모아준 종잣돈과 김 사장의 아이디어와 친화력이 전부였다.

 열림기술은 그 다음해 ‘한보사태’라는 돌출변수를 맞았다. 열림기술은 한보철강으로부터 수십억원의 대금을 받지 못했고, 결국 그해 초반 부도를 맞았다. 흑자부도였다. 위로의 말을 건네려고 만난 자리에서 그는 태연하게 별 거 아니라며 웃었다.

 열림기술은 그해 하반기 골도 전화기를 출시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고막을 통해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인체 내의 ‘골도청각’이라는 기능을 이용해 듣는 방식의 획기적인 전화기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기술이전을 받아 상품화에 성공한 이 제품을 통해 열림기술은 확실한 성장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시험통화를 할 만큼 이 전화기는 장안의 화제였다. 국내 제품명은 ‘효도전화기’, 해외에서는 ‘미라폰(Mirafone)’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열림기술은 97년 11월 미국 시장에 ‘골도 유선전화기’ 수출계약을 성사시켰다. “LC(신용장) 받았습니다. 소주 한잔 합시다.” 김 사장이 신용장을 받고 감격에 겨워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던졌던 첫마디다. 그는 그날 신용장을 들고 술자리에 합류했다. 신용장을 앞에 놓고 밤새도록 술잔을 비웠다.

 98년 3월 열림기술은 청각 장애인용 ‘골도헤드폰’을 개발, 11월 미국 포퓰러 사이언스지 ‘100대 신개발품’으로 선정돼 금메달을 수상했다. 98년 무역의 날에는 ‘1백만불 수출의 탑’을 받더니 다음해에는 ‘5백만불 수출의 탑’ 수상했다.

 이후 열림기술은 모뎀사업과 디지털 셋톱박스 사업에 나선다. 아랍에미리트에 셋톱박스 중동 수출을 위해 두바이 지사를 설립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사업다각화에 성공한 열림기술은 2001년에 셋톱박스 수출만으로 50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신기술 실용화에 성공한 기업으로 선정돼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2003년 ‘3000만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며 셋톱박스 업체로 입지를 굳혔다.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 999억원까지 도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1000억원을 넘어서려면 기존 경영 방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내년 1000억원을 도달하고 세계적인 셋톱박스 업체로 성장하려면 그 규모에 타당한 연구개발과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돼야 합니다.”

 2004년 열림기술의 매출 목표는 700억원이다. 이 목표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것도 모두 중동과 유럽, 북미 지역에서 수출로 거둬들인 성과다. 열림기술은 요즘 사람을 찾고 있다. ‘열린’ 세계로 동참하려는 꿈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게 이 회사의 고민거리다.

 1000억원대를 넘어서, 세계적인 정보가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인재를 찾는 일이 김 사장의 하루 일과다. “어디 좋은 사람 없습니까?” 문을 나서는 기자에게 김 사장이 건넨 마지막 말이다.

*내가 본 우리회사:강승찬 해외영업팀 주임 

 ‘꿈, 창조 그리고 열림’이라는 사훈이 말해주듯, 열림기술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열림기술은 창조적인 업무태도와 개인의 역량을 가치있게 여기는 조직이다. 각 직원의 자율성과 책임의식을 중시하는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우리 회사에서 말하는 열림이라는 의미는 세상을 향해, 회사를 향해, 가정을 향해 항상 열려 있는 창을 뜻한다. 입사한 지 3개월밖에 안 됐지만 열림 속에서의 생활이 익숙하다.

 우리 회사는 고객에 대한 기민한 대응, 일관성 있는 생산체제를 갖춘 회사다. 방송 수신기 시장의 중동 중심지인 두바이와 유럽의 중심지 프랑크푸르트 판매법인을 거점으로 자체 브랜드 및 OEM 영업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전세계 수출·영업망 구축을 시도중이다. 해외에서 품질과 기능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어 곧 글로벌 벤처기업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회사는 무척 빠르고 강하다. 구성원들의 투철한 책임정신과 열정과 의지가 매우 강하며, 담당업무가 명확하다. 입사 3개월 만에 나는 열림기술이 가진 강점을 여러 차례 보았다. 그것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시련을 겪으며 단련된 열림기술만의 노하우라 생각한다. 바이어와 미팅 또는 통화를 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우리 회사가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회사임을 알게 됐다. 그것은 열림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

 국내외 셋톱박스 시장은 전쟁중이다. 나는 고객 입장에서 창조적이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열린 마음으로 세계 시장으로 달려가는 열림인으로 성장하고 싶다.

*이끄는 사람들

열림기술의 조직은 3개 본부와 연구소로 구성된다. 현재 직원은 포이밸리 본사와 안산공장, 프랑크푸르트, 중동 두바이 지사를 포함해 100여명이다. 매출액이 700억원 가량이고 보니 1인당 연간 7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직원 대부분 “이제 해볼 만하다”는 평가를 내릴 만큼 자신감이 붙었다.

 각각의 본부체제를 맡고 있는 임원은 모두 대기업 출신이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큰 마케팅을 해본 사람이 크게 생각한다는 김희수 사장의 고집도 약간 섞여 있다. 대기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임원들의 시각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남시만 연구소장(44)은 S전기에서 관련 분야 엔지니어로 있었다. 골전도 전화기 이후 셋톱박스 사업 초기에 합류해 지난 4년간 연구소를 맡고 있다.

 남 소장의 주 특기는 정확한 시장대응이다. 마케팅 시점에 맞춰 빠르게 개발하고, 다른 회사보다 먼저 납품하는 것이 후발주자의 과제라고 보고 있다. 올 한 해만도 30여개의 신제품을 출시해 해외에서 호평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남 소장은 내부에서 제품 개발과정 초기부터 마케팅을 고려하는 이른바 영업 마인드를 갖춘 엔지니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업본부를 맡고 있는 최장석 상무(47)는 KAIST에서 기술 경영 및 마케팅을 전공한 재원이다. S물산에서 정보통신사업부 뉴미디어 팀장을 하던 중 김 사장 눈에 띄어 영입된 인물. 김 사장이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다고 한다. 대내외적으로는 무척이나 깐깐하지만 뒷끝이 없다.

 최 상무는 20년간 국내외 영업 부문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유럽과 중동뿐만 아니라 신시장 개척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최 상무는 무엇보다도 사내 전문인력 양성과 기술영업에 회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믿는 영업 전문가다.

 생산본부를 담당하고 있는 박재덕 상무(48)는 KAIST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고 S전자에서 생산 관련 업무와 전략 마케팅을 담당했다. 직원들에게 제조업체의 기본에 대한 중요성을 자주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사내에서는 원론주의자, 교수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생산라인 수장답게 “품질만은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할 수 없다”고 주장해 격렬한 사내 논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경영지원본부를 맡고 있는 박정섭 이사(43)는 대농유화, 세원텔레콤에서 일하다 6년 전에 열림기술에 입사했다. 회계 전문가면서도 관리업무에 능통하다. ‘관리는 집 안의 현명한 어머니 같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회사 규모가 나날이 성장하는 요즘, 새로운 차원의 경영지원업무를 도입중이다.

 마케팅 담당임원인 부기진 박사(45)는 KAIST 석사 및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통신에서 근무하다가 열림기술에 입사했다. 미국 내에서도 유명한 마케팅 리서치상을 2회나 수상했다. 대내외적인 마케팅 업무뿐 아니라 기술 컨설팅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