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4인승 소형 단발 항공기 ‘반디호’의 남·북극점 종단 사업이 백지화됐다.
이번 사태는 지난 8월 국내에서 발생한 차세대 4인승 단발항공기 보라호 추락사고 여파때문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해당연구원들에게 엄청난 사기저하를 가져오고 있다. 게다가 과학기술계는 일단 중단시킨 사업을 쉽사리 재발진시키지 않는 관행상 이번 사태가 자칫 향후 소형항공기 상용화계획의 전면적 수정은 물론 기술퇴보까지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12일 항공우주연구원과 과학기술계 관계자에 따르면 항우연은 지난해 개발한 단발기 ‘반디호’를 미주 시장에 진출시키기 위한 시험 무대로 비행거리 5만㎞의 남·북극점 종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제 비행에 나섰으나 보라호 사건이 터지며 국내 기술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와 연구원들의 위험에 도전하려는 의지가 꺾여 끝내 무산됐다.
◇보라호 사고로 연구원 사기 바닥=남·북극 점 종단에 나섰던 ‘반디호’는 지난 2001년 초도 비행에 성공한 뒤 해외 에어쇼에 출품돼 비행성능과 디자인 등에서 호평을 받는 등 외국으로부터 항공기 제작 능력과 기술력을 인정받아 왔다.
반디호 남북극 종단 취소를 초래한 보라호도 항우연이 과기부로부터 48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전진익기이다.
그러나 보라호가 지난 8월 성능 시험비행 도중 추락, 항공대 교수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 연구원들의 사기를 꺾은데다 위험을 회피하는 정부의 약한 의지와 비난 여론으로 연구원들은 더 이상 모험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주위의 시각이다.
◇미국, 실패해도 끝없는 도전=미국의 경우는 지난 1986년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한 지 73초 만에 고체 연료 부스터에서 연료가 새면서 외부연료 탱크로 불이 옮겨 붙어 우주 비행사 7명이 사망하는 사고를 당했다.
또 지난해엔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호가 폭발, 역시 7명의 고급인력을 잃는 참사를 겪고 우주개발 계획을 중단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내년 5∼6월께부터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비행을 재개하는 우주개발 계획을 여전히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또 러시아의 경우도 지난 1971년 소유즈 11호의 우주 비행사 2명이 우주 정거장 살류트 1호로 옮겨 탔으나 되돌아 오는 데 실패해 2명을 잃는 사고를 겪었으나 우주 계획은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할수록 사기 북돋워줘야=국내 항공우주 전문가들은 “프로젝트 수행에서 특히 우주·항공분야는 100% 성공이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한다. 더욱이 과학기술 역사 자체가 끊임없는 실패 위에 오늘의 문명을 일굴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달라고 입을 모은다.
NASA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정선종 전ETRI 원장은 “보라호의 경우는 애초부터 상식을 벗어난 시도였다”며 “비행기는 개발비의 60%가 이륙 전 시험이나 품질보증 등 신뢰도 부분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항우연 채연석 원장은 “반디호의 우수한 성능은 이미 입증됐다”며 “다만 남·북극 종단 때 바다에서는 불시착할 장소가 없어 비행사고가 생길 수도 있는데다 참여업체들의 상업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을 전면 재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