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 애드햄과 마이크 모헤임이 세운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2’와 ‘디아블로’로 대성공을 거두자 이에 고무돼 ‘디아블로 2’와 새로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은 ‘워크래프트 2’의 신화를 이어가기 위해 큰 변화를 주지 않고 대신 배경만 우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불멸의 이름 ‘스타크래프트’였다. 초창기 ‘스타크래프트’는 ‘워크래프트 2’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종족을 두 개에서 하나 더 추가해 3가지로 만드는 것에 컨셉을 맞췄다. 1996년 처음 E3에서 알파 버전이 공개되었을 때 ‘스타크래프트’는 거의 ‘워크래프트 2’와 매우 흡사했고 그래픽 수준도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색은 조잡했고 미니맵의 위치가 왼쪽 최상단에 존재하는 등 현재와 유사한 면이 없었고 완전히 다른 게임이었다.
저그 종족의 이름도 원래는 나이트매리쉬 인베이더였고 이를 수정해 저그(Zurg)로 바꿨다가 다시 저그(Zerg)로 최종 확정됐다. 1997년 초반에 ‘스타크래프트’는 2D 그래픽으로 원근감을 살려 3D의 효과를 줬다.
그러나 유닛들의 크기 비례가 맞지 않고 어색해 또 다시 수정됐다. 1997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많은 부분이 안정됐지만 그래픽은 여전히 칙칙했으며 세련된 맛이 부족해 그대로 출시될수는 없었다.
1997년 하반기부터는 개발자들이 지옥을 맛 봐야 했다. 아예 회사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문 밖을 못 나가는 나날을 계속 보냈다. 밥도 남들이 가져다 주는 음식으로 허기를 달랬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게임의 개발자들은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만든 게임에 푹 빠져 너무나 큰 재미를 느꼈으며 ‘스타크래프트’가 히트칠 것이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 4월 게임은 출시됐고 북미에서 발매 3개월만에 백만장을 돌파했으며 우리 나라에서만 지금까지 약 250만장이 팔리는 신화를 창조했다.
북미 출시에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서 발매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불법 복제가 무척이나 쉬었던 PC 게임이었지만 ‘다크 레인’이나 ‘토탈 어나이얼레이션’ 등 경쟁작들이 꿈도 꾸지 못할 성공을 우리 나라에서 거뒀다.
이 게임은 대학에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밤을 새서 연구해야 할 대학원생과 대학생들은 새벽까지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다. 이런 영향은 점차 고등학교와 중학교로 파급돼 나갔다. 인기는 당시 웹 서핑과 문서 작성을 위해 세워졌던 인터넷 카페를 점령해 PC방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도록 만들었다.
PC방은 오로지 게임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고 게임의 핵심은 바로 ‘스타크래프트’였다. PC방 사업이 신종 아이템으로 급부상했고 IMF로 피폐해진 샐러리맨들은 새로운 돌파구로 PC방을 선호했다. 그리고 실제로 초창기 PC방들은 엄청난 돈을 끌어 모았고 부를 축적하기에 이르렀다.
‘스타크래프트’의 열풍은 술과 담배, 당구 외에는 낙이 없었던 직장인들 에게로까지 번져가 30대들의 최대 오락으로 등장했으며 “스타 할 줄 모르면 왕따”이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아 나갔다.
그러나 이 게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리그가 만들어지고 방송사가 뛰어 들었으며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까지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누구도 게임을 위한 케이블 방송이 성공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예상 외로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탄탄한 기반을 잡는데 성공했다.
모든 전문가들이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를 3년 이상으로 보지 않았지만 이 게임은 지금도 일반 매장에서 팔리며 최고의 PC 게임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 누군가 얘기했던 “‘스타크래프트’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니며 독립된 문화 콘텐츠”라는 말은 정확한 분석이다.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은 많았고 지금도 많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분석해봤을 때 ‘스타크래프트’가 타 게임보다 특별한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패치로 완벽한 밸런스 조정을 이룬 것도 발매 후 오랜 기간이 지나서였다.
그러나 이 게임의 최고의 무기는 바로 배틀넷이었다. 배틀넷의 위대한 점은 책 하나를 써도 모자를 지경이다. ‘디아블로’에서 처음 도입된 배틀넷 시스템은 ‘스타크래프트’에서 더욱 편리하게 강화됐는데 다른 개발사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점이다. 게임의 최대 묘미는 다른 유저와 경쟁을 하는 구조다.
어두운 방에서 윙윙거리는 컴퓨터 소음을 참으며 홀로 플레이하는 재미를 무시하긴 힘들지만 자신이 갈고 닦은 실력을 인공 지능이 아닌 실제 인간과 겨루보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은 인터넷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고 멀티플레이를 지원하고 싶어도 기반이 너무 약했던 때였다. 따라서 개발사들도 근거리 멀티플레이만 지원하거나 IP를 직접 입력하는 방식으로 멀티플레이를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너무 불편하고 미리 약속된 상대가 아니면 대전이 불가능한 단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배틀넷은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다. 특별한 도구도 필요없었고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에서 단순 클릭만 하면 세계 유저들이 모여있는 배틀넷으로 연결됐다.
배틀넷은 기본적으로 채팅이 가능했으며 유저는 자신이 원하는 ‘방’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방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곧바로 게임 플레이를 즐겼고 끝난 후에도 채팅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전략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배틀넷은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작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의 홈페이지를 가면 다음과 같은 시스템 사양이 적혀 있다. ‘윈도우 9598NT, 펜티엄 90 또는 그 이상, 16 MB 램, 다이렉트X 호환 SVGA 비디오 카드, 마이크로소프트 호환 마우스, 2배속 CD-ROM(동영상 감상엔 4배속 권장).’ 펜티엄 4에 익숙한 유저는 아마 생소할 것이다.
쉽게 말해 5년 전에 설립돼 단 한번도 컴퓨터를 바꿔주지 않은 짠돌이 회사의 컴퓨터도 이 게임은 싱싱하게 돌아간다는 소리다. 많은 게임들이 시대를 앞서가며 더욱 뛰어난 하드웨어를 구입하도록 만드는 것에 비하면 많이 비교되는 부분이다. 이런 요소가 ‘스타크래프트’를 끊임없이 팔리도록 하는 중요한 장점 중의 하나인 것이다.국내 모든 유저들은 아마 ‘스타크래프트 2’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지만 블리자드에서 ‘스타크래프트 2’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은 계속 나돌고 있다.
만약 ‘스타크래프트 2’가 국내에 출시된다면 엄청난 폭풍이 휘몰아 칠 것이 분명하다. 아니,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만 블리자드에서 확인해줘도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스타크래프트 2’가 발표되기를 원하지만, 이제 대박은 국내 업체가 만들어 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고 이런 마음을 개발사와 유저들도 알아 줬으면 한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