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칼럼]나의 행복론

머릿 속으로 그리던 수만 가지의 아이디어가 하나씩 눈앞에 드러나며 갈 길이 정해지면, 그 때부터 내 걸음은 빨라진다. 빠른 걸음. 나는 이제 그 걸음에 익숙하다. 느리게,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보거나, 발 밑을 쳐다보거나, 저만치 골목길 너머의 풍경들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느릿느릿 걸어 본 기억은 참 아득한 일이다.

하지만 일밖에 모르던 것은 아니었다. 행복의 가치를 오직 일에만 두고 있을 만큼 냉철한 기업인은 못되는 모양이다.

누구나 훗날을 생각한다. 훗날을 기약하기도 하고, 훗날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려보기도 한다. 무슨 일이든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 ‘훗날’에 대한 생각도 퍽 즐기는 편이다. 10년 뒤, 15년 뒤, 30년 뒤…. 그런 날들을 떠올려 보는 것은 오늘을 사는데 적잖은 위안이 되는 까닭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의 어느 날,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상상하면 계집아이처럼 상기된다. 그 생각들 속에는 포도 농장도 있고, 세계적인 기업도 있다. 두 가지의 양분된 삶을 손바닥 안에 펼쳐 놓고 저울질해 보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미리 설레면서 점치는 일이 즐겁다.

공기 좋은 곳에서 포도 농장을 하고 있는 꿈은 오래 전부터 가슴에 담아 둔 것이다. 지금의 하루하루가 다리 한쪽 마음대로 누여 볼 수 없을 만큼 분주하지만 전혀 지치지 않는 것은 이 다음의 어느 날에 대한 꿈이 있어서다. 해를 즐기고, 비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포도 향기를 즐기는 일은 내가 포도 농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들이다.

씨 뿌려 거둔 포도로 와인을 담그면서, 그 술로 좋은 사람과 마주 앉은 시간을 채우면서, 그렇게 사는 꿈은 나쁘지 않다. 그 때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범한 여자로 되돌아간다 해도 그만한 행복이면 누릴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반대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다. 지금보다 더 빡빡한 시간들을 살게 되겠지만 그대로의 특별한 가치가 있으니 그 역시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미리 살피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끌어 가야 할 사업의 방향도 덤으로 얻게 되곤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좋은 남자를 만나 서로 화합하면서 이상적인 가정을 꾸려 가는 이웃의 여자들에게 부러움을 느끼곤 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살지 못하리란 확신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편안한 가정을 꾸려 가는 것이 나의 기대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 화합하면서 가정을 꾸려 가는 행복을 기대하고 있다. 아니, 그것은 행복이 아닌 축복이라고 믿는다. 그 사람과 함께라면 공기 맑은 곳에서의 포도 농장도 가능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의 발돋움도 자신이 생긴다. 그래서 요즘은 세월 지나 이 다음 어느 날을 그려보는 일이 더욱 행복하다.

<이젠 사장 saralee@e-ze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