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부 사∼랑∼해∼요!
가업을 잇는 풍속이 드문 우리 사회에 딸이 같은 직장에 근무한다는 건 확실히 특별한(?) 경험이다. 설레이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김재현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은 지난해 3월 산자부 무역투자 실장을 끝으로 28년간의 산자부 생활을 마감했다. 돌이켜보면 산자부(당시는 상공부) 사무관으로 입사(75년), 근 30년을 한국의 산업 과 무역 발전에 헌신한 세월이었다.
그런 김 회장은 요즘 큰 딸인 장희 씨를 보면 흐뭇하기만 하다. 평소 영민하던 장희 씨가 고시를 거쳐 그가 근무했던 산자부에서 현재 맹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전 중소기업청 정책총괄과를 시작으로 공무원 생활을 한 장희 씨는 올 5월부터 산자부 중국협력기획단에서 일하고 있다. 요즘 장희 씨는 주말에 있을 중국 방문을 앞두고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
‘전공’ 답게 장희 씨는 중국에 대해 “정부나 민간에서 향후 비전을 세울 때 중국이라는 변수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올바른 방향을 세우기 힘들 정도로 중국이 중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급성장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나 민간이 철저히 대응해야 겠지요”라고 훈수했다.
장희 씨의 주무대인 중국은 김 회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 화상대회가 내년 10월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데 바로 이를 유치한 주인공이 김회장이다. 2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원래 2005년 행사는 일본에서 열리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2002년 당시 산자부 무역투자실장이던 김 회장은 이 행사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던 홍콩 정부를 집요하게 설득, 결국 유치 가능성이 5%도 안되던 2005년 대회를 한국에서 열리게 만들었다.
이밖에도 총 6800억원이 투입된 대구·경북 지역 섬유 산업 발전(밀라노 프로젝트)과 부산의 신발산업 육성, 그리고 광주의 광산업 육성 같은 지역 균형 발전 전략 등이 김 회장의 손을 거쳤다.
김 회장이 30년간 산자부 생활중 화상 대회 유치를 가장 큰 보람으로 꼽은 반면 장희 씨는 중기청에서 맡았던 여성 기업인 지원 업무를 가장 큰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 여성기업인이 어느날 간담회에서 그러더군요. 정말 필요한 지원 사업이었는데 너무 감사하다고요” 이때 장희 씨는 처음으로 공무원 하는 ‘맛’을 알았다.
사실 장희 씨가 고시를 택한 것도 아버지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여러가지 직업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고시(행시)를 하면 일반 기업에 취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고시를 택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아 택한 고시였지만 지금은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에 긍지와 보람을 갖는다며 장희 씨는 수줍게 웃었다.
워낙 바쁜 아버지를 뒀던 장희 씨는 가족과 제대로 여행 한번 가는 것이 소원이었다. 장희 씨 가족은 김 회장이 산자부에 근무하던 92년 6월부터 근 10년간 김 회장의 바쁜 업무 때문에 휴가를 가지 못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장희 씨는 “제발 가족끼리 같이 여행 한번 가자”고 졸랐지만 허사였다. 부녀는 이 한을 김 회장이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던 90년대 초에 풀었다. 당시 가족 모두가 한달간의 기간으로 미국을 여행 한 것이다. 당연히 부녀가 꼽는 베스트 가족 추억에 미국 여행이 1순위로 꼽힌다.
산자부와 서울대 동문 이라는 점 외에도 부녀는 옳은 일은 소신있게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도 서로 닮았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김 회장은 “공무원은 가난해서 싫다”며 굴지의 전자기업에 다니고 있는 아들 보다 딸에게 더 시선이 간다.
하지만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딸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늘 조마조마 하고 아슬아슬 하다. “어떤 어려운 경우라도 최선을 다하면 그 난관을 극복 할 수 있다”고 딸에게 당부한 아버지는 나무처럼 높게, 그리고 산처럼 강하게, 또 봄바람 처럼 부드럽게 살 것을 딸에게 마지막으로 바랬다.
방은주기자@전자신문, ejb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