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후지쯔 전략기획부문장인 김병원 상무(51)를 최근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다소 마른 체구에 일면 깐깐해 보이는 듯한 인상이지만, 동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실웃음은 상대에게 오히려 시골 농부 같은 구수함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지난 79년 입사한 이래 25년을 한국후지쯔와 함께했다. 한국후지쯔가 올해로 30년이 됐으니 사내에서 그는 경력으로 보나 직위로 보나 이제 몇째 안 가는 ‘고위층’이 됐고, 그만큼 어깨도 무거워졌다.
김 상무는 바둑을 즐긴다. 그의 실력은 온라인에서 아마 5단이니 아마 실제로는 한 3단쯤 되는 모양이다. 이 정도면 그의 성격이 매우 느긋하고 여유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급한’ 편이다. 바둑도 의외로 빨리 둔다.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요. 임원이 되면서부터는 좀더 신중히 생각하고 움직이려고 하지만 아직도 빠른 편입니다. 성질이 급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의사결정이 신속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성격이 이렇다 보니 직원들에 대해서도 ‘전문가’로서 담당자 역할을 분명히 해주기를 직접적으로 주문한다. 그에게는 ‘만약, ∼할 경우’ 등과 같은 가정은 통하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대안이 있다며 윗선에서 결정하라는 얘기는 결국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빌미 아닌가요. 담당자가 권한을 가진 전문가로서, ‘이 안이 좋다’고 말하고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상무는 사내에서 집중력이 강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후지쯔의 한 직원은 “입사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에서 근무할 때는 밤샘 작업을 하기 일쑤였으며, 임원이 돼서도 8∼9시간을 꼼짝도 않고 보고서를 만들 정도로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후지쯔에 근무했던 지난 25년은 가히 ‘인연’ 수준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에 지원한 것이나, 면접 시험 당일 지각을 하고도 합격한 것 그리고 입사 이후 우연한 기회에 얻은 3개월간의 일본 출장길에서 일본어를 마스터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출장나온 후지쯔 본사의 엔지니어를 데리고 용인민속촌 등을 찾은 횟수가 50여회가 넘을 정도로 지극했던 그의 열정도 뒷받침된 것은 물론이다.
흔히 후지쯔 하면 ‘가족적’인 기업문화를 꼽는다. 김 상무는 그러나 ‘가족적’이라는 의미가 잘못 이해되고 있다는 데 섭섭함을 감추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숙명론보다는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어려움을 같이 헤쳐나간다는 의미를 가질 때 가족적이라는 문화는 좋은 기업문화가 될 것입니다.”
한국후지쯔는 이제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안경수 회장이 11개 국가의 후지쯔 현지법인 회장을 맡아 변혁을 추진하고 있고, 한국후지쯔 역시 이 흐름을 앞장서 주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개발·기획·마케팅 등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그의 능력이 기대된다.
박영하기자@전자신문, y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