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리그가 이제 막 궤도에 올라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2001년 여름, 필자는 또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게임리그가 영원할 수는 없을까?”가 고민이었다. ‘스타크래프트’의 열기가 올해부터 시들해 질 것이다, 아니면 내년에는 꼭 사라진다…. 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게임리그와 프로게이머에 대해 숨길 수 없는 애정이 생겨버린 후였다.
그렇다고 필자가 뭐 큰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이제 막 돌을 넘긴 아들녀석이 훌쩍 커버렸을 때도 프로야구처럼 건재한 게임리그 결승전 쯤을 손잡고 함께 가서 약간 잘난척 하고 싶은 것이 필자의 소망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리그가 한순간의 트렌드로 끝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이제 막 스타로 뜨기 시작한 프로게이머들. 그 디지털 세대가 만들어낸 첫번째 히어로들은 게임리그가 사라지면 그 어디에도 갈 곳이 없게 된다.
‘게임리그가 장르가 되려면 스타크래프트를 이을 새로운 게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때 내린 결론이었다.
‘스타크래프트’가 비록 한국 역사상 최고로 사랑을 받는 게임이었지만 100년, 200년 가는 게임은 아니었다. 더구나 내게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과 그 게임의 플레이어가 펼치는 경기가 더 중요했다. 이를 하나의 장르로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 이 성공의 실체는 게임 개발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선수와 팬,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는 전문가들의 애정과 땀과 눈물이 창조해 낸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런데, 누가? 당시 필자의 뒤를 이어 게임리그 판에 뛰어든 후배들에게 필자는 그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건 형이 지금 인기 절정의 스타리그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 친구들의 이야기도 옳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자리에 편히 앉아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오만이다. 적어도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비친다. 그래서 필자는 스타리그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떠나는 것은 그것을 시작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웠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미친짓’이라고 했듯이 이번엔 떠나겠다고 하니 또 ‘미친 짓’이라고 했다. 왜 그러느냐,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하고 물어주면 다행이었는데, 당시 담당 스태프들은 아예 내 말에 상대를 하지 않았다. 결국 필자는 생방송 도중에 “이번 시즌을 끝으로 후배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자 합니다”라고 폭탄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도 두 시즌을 더 스타리그를 진행했다. 그러나 그건 떠나기 위한 수순을 밟은 것에 불과했다. 당시 필자를 엄청나게 구박(?)하며 스타리그 퇴진을 만류했던 한 기자가 말한다. “당신이 그만 두고도 스타리그가 잘 되니 배아프지?” 농반 진반으로 던진 그 말에 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그만둬서 잘 되는 거 같지 않아?” 굳이 농담만은 아니다. 물은 고이면 썪는다. 캐스터도, 해설자도, 혹은 그 게임 자체도…
<게임케스터 nouncer@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