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열전]판타그램

 판타그램(대표 이상윤)의 역사는 한국 게임산업의 10년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변화의 줄기 맨 중심부에 있었다.

 해외에 한국 게임의 이름을 처음으로 각인시킨 PC게임을 만들어내더니, 이후 세계 게임시장의 맹주로 떠오른 온라인게임 개발에도 가장 앞줄에 섰었다.

 그러다 2년전 쌓아온 기술력 모두를 쏟아부어 마이크로소프트 X박스용 게임을 만드는데 뛰어들었고, 올해 9월 ‘킹덤언더파이어:더 크루세이더즈(크루세이더)’란 결실을 이뤘다.

 지난 94년 개인회사로 출발한 뒤 올해로 꼭 10년 만에 판타그램은 크루세이더로 ‘2004대한민국 게임대상’을 거머쥐게 된다.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온 판타그램에 주어진 세밑 선물이었다.

 판타그램은 10년을 변치 않고 꼿꼿이 지켜온 개발사로서의 가치관에서 다른 여러 게임업체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게임을 여전히 ‘돈’에만 결부시키는 풍토가 업계엔 팽배해 있다. 게임을 만들기에 앞서 ‘이것이 진정 게임으로서의 가치를 갖느냐’는 판단은 뒷전이고, ‘돈이 될까 안 될까’하는 고민만 난무한다. 하지만 판타그램은 ‘게임 다운 게임’을 만드는데 매진해왔다. 10년동안 PC게임의 국내외 히트로 반짝 흥행기를 겪은 것만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은 ‘배고픈 개발사’로 살았다.

 돈이 되는 게임보다는 게임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는 이상윤 사장의 개발자다운 ‘고집’이 크게 작용했다.

 판타그램은 지금도 외부에 비춰질 때 소위 ‘잘나가는’ 게임업체는 아니지만 실력 있는 개발사로 더 잘 통한다.

 회사가 문을 닫을 정도의 고비를 수차례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탄탄한 개발력과 게임에 대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PC게임으로 다진 기반을 온라인게임을 이용한 ‘돈벌이’로 이어갔다면 지금과 같은 어려움은 겪지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면 한국은 ‘크루세이더’라는 작품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개발사 다운 개발사 하나를 속절없이 잃고 말았을 것이다.

 판타그램은 게임시장이 선택한 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 장르에는 관심이 없다. 이상윤 사장도 “예전엔 잠깐 한눈을 판 적도 있지만, 앞으로 판타그램이 MMORPG를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판타그램은 고집스러우리 만치 ‘누구나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

 이상윤 사장은 앞으로 판타그램이 만들 게임의 개념을 ‘콘솔온라인’이라고 규정한다. PC온라인이 한국, 중국, 동남아 등에서 잔뜩 기세를 올리고 있는 듯 하지만, 결국 온라인기능의 강화로 줄달음치고 있는 콘솔과 온라인시장에서 맞붙을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경쟁에서 판타그램은 세계 기반을 더 확고히 다진 콘솔 온라인쪽에 서겠다는 전략이다.

 판타그램은 북미와 한국, 유럽에 잇따라 출시한 ‘크루세이더’를 올해 안에 35만장까지 판매한다는 목표다. 또 내년 1월중 일본시장 판매에도 나서, 전세계 콘솔게임시장 중앙무대에 당당히 올라서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한국 게임산업은 이제 전환기에 서있다. 세계 최대 광대역 인프라를 기반으로 급성장한 온라인게임이 전체 게임산업을 지탱하고 있지만,이 역시 해외 거대기업의 공세와 시장잠식 앞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전세계 게임시장의 60∼70%를 차지하는 콘솔게임에 하루빨리 뛰어들어 한국만이 가진 강점을 접목시켜야 한다. 판타그램이 그 화두를 한국 게임업계 전체에 던진 셈이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etnews.co.kr

◆이끄는 사람들

 이상윤 사장(33)은 판타그램의 과거, 현재, 미래를 꿰고 있는 주역이다.

 지난 94년 23세의 나이로 판타그램을 차릴 때부터 시작해 중간중간 속절없이 당하고만 살면서도 판타그램을 추스리고 유지해온 것도, 앞으로 세계적 개발사로 커 나겠다는 비전까지도 모두 그에게서 나온다. 이 사장은 ‘쟁이’ 정신으로 똘똘뭉친 개발자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떤 것이든 달게 받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한 게임 개발을 15년 가까이 이어오면서 그는 남들처럼 부자가 되지 못했다. 돈을 쫓아 달린 것이 아니라 게임가치를 쫓은 탓이다.

 김성덕 부사장(50)은 이 사장과 함께 거의 모든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판타그램의 맏형이다. 8년전 김 부사장은 모기업 런던 주재원으로 활동하다 이 사장을 만났다. 이후 이 사장의 게임철학에 반해 판타그램에 합류했고, 지금까지 판타그램의 해외 사업을 총괄하며 종횡무진 세계를 누비고 있다. MS와의 X박스용 타이틀 개발 계약에서부터 크루세이더의 해외 흥행성공 등 모든 것에서 그의 공이 컸다. 한 때 “우리도 돈 되는 게임좀 만들자”고 이 사장한테 불평했던 경험을 가진 그는 지금은 이 사장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로 자리하고 있다.

 구의재 이사(31·CFO)는 판타그램이 엔씨소프트에 합병됐다가 분리되어 다시 떨어져 나오던 시점인 지난 2003년말 합류했다. 이후 주주들의 불평과 채권단의 횡포를 온몸으로 막아낸 것이 구 이사다. 올해 대한민국게임대상을 받고 가장 기뻐했던 사람중 하나가 바로 구 이사다.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자금 압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판타그램의 재무 회복을 누구보다 자신하고 있다. 크루세이더의 순항이 재무회복에 결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판타그램이 개발력 만큼은 출중한 업체란 명성을 얻는데 있어 이현기 개발실장(30)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크루세이더’를 만들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KAIST 졸업 후 그는 여러 번듯한 회사에 갈 수 있었지만 거의 무조건적으로 판타그램을 택했다. 이 실장은 “콘솔게임에 대한 뜻이 확고했는데, 그것을 뒷받침해줄 만한 곳이 판타그램밖에 없었다”며 운명을 강조한다.

 그는 차기작 프로젝트에서도 이상윤 사장과 한 몸처럼 함께 생각하고, 함께 움직이고 있다. 좌우명은 ‘세계시장에서 인정받자’이다. 판타그램과 판타그램 게임의 세계화가 그의 손끝에 달려 있다.

◆게임개발자 사관학교 판타그램

 판타그램 출신의 개발자들이 국내 내로라하는 게임개발사 대부분에 1∼2명씩은 포진해 있다. 그래서 판타그램은 ‘개발자 사관학교’라는 별명이 붙었다.

 개발분야 원로로 통하는 손노리 이원술 사장도 잠시나마 판타그램에 몸을 담았다. 이 밖에 수많은 개발 역군들이 판타그램에서 길러졌다. 국내 1세대 개발자 중 한 명으로 통하는 김남주 웹젠 사장도 “판타그램이 없었다면 국내 개발 역사는 한참 뒤로 밀렸을 것”이라고 평할 정도다.

 이상윤 사장은 게임엔진과 그래픽 분야에 특히 강한 면모를 갖고 있다. 그래서 판타그램을 거친 개발자 대부분은 기획보다는 그래픽과 엔진 쪽에 일하는 사람이 많다. 판타그램은 비록 자기가 화려하게 성장하진 못했지만 국내 산업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