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있어 거기에 오른다고 했다.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실존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게 산행의 본질이다. 앞만보고 달려온 남용 LG텔레콤 사장에게 그래서 산은 더욱 잘 어울린다. LG에 몸 담은 뒤 맹렬한 열정으로 20여년 만에 CEO의 자리까지 오른 그다. 실장으로 현업을 뛰던 시절 일에만 깊숙히 몰두하는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LG텔레콤 CEO를 맡은 뒤에도 정열적인 몰입으로 임원들의 혼을 쏙 빼놓곤 한다. 그런 그가 겨울 내내 산에 오른다. 기자가 직접 그의 주말 겨울 산행에 동행했다.
#출발
지난 18일 토요일 아침 8시. 관악산 초입. 남 사장이 겨울 산행 시즌을 시작한 첫 날이다. 과천유원지로 올라 연주암과 팔봉능선을 거쳐 서울대로 내려오는 코스다. 그의 산행엔 본부별로 휘하 직원들이 돌아가며 동행한다. 600만 달성의 주력부대인 서울 수도권 제1사업본부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남 사장은 위 아래 검은 등산복에 파란색 두 줄이 난 검은 등산모를 쓰고 나타났다. 까무잡잡하고 다부진 얼굴이 더욱 돋보였다. “뭘 여기까지 나왔어요. 같이 올라 갑시다.”
#산행
그는 산을 ‘열심히’ 올랐다. “산에 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화두를 하나씩 정하고 좋은 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오늘의 화두는 뭐죠?” “음… 올해 뱅크온을 했으니까. 내년엔 MP3폰 서비스인 뮤직온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그는 하산하는 내내 MP3폰으로 이선희의 ‘겨울애상’,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와 같은 노래를 들었다)”
뒷짐지고 산을 오르는 그의 속보와 속도를 맞추느라 기자는 정신이 없다. 애당초 겨울 풍경을 완상하고 마음 깊은 대화를 나눌 여유로운 산행은 아니었다! “워낙 건강체질이시죠?” “대학 다닐 때 상과대학 배구선수를 했습니다.” 하지만 등산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2년전 처음으로 직원들을 데리고 등산을 했습니다. 청계산이었죠. 그런데 두 시간 만에 제가 퍼졌습니다.” (이후 매일같이 산에 올랐고 지금은 누구보다 산을 잘 탄다.) 한참을 대화하며 올라도 남 사장은 속도를 늦추거나 호흡을 흐트리지 않는다.
결국 56세의 이 정열적인 CEO는 중간에 퍼진 30대 초반의 기자를 뒤에 남기고 힘차게 발을 디디며 앞질러 갔다. 2시간으로 나와 있는 연주암까지 코스를 완주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
#정상 즈음
연주암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손에 들었다. 이래저래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문득 등산도 경영의 일환이다 싶었다. 인간적인 면모를 들어야 하는데…. 넋놓고 편안히 쉬는 시간은 없을까? “ 댁에 돌아가면 뭘하세요?” “씻고 책 봐야죠. 몇 권 가져다 놨습니다.” “가족들이 섭섭해 하겠습니다.” “허허 명절 때도 집에 있어보면 책 보는 거 말고는 할 일이 없던데요.” “무슨 책 보세요?” “도요타 책을 읽습니다. 지금 ‘렉서스’를 읽고 있고, 오쿠다 히로시의 제자들이 쓴 경영서적도 읽으려 가져다 놨습니다.” “잭 웰치 회장을 존경하신다고 들었습니다.” “GE는 의사결정에, 도요타는 오퍼레이션에 결함을 최대한 줄여 극도의 효율을 찾아낸 회사죠. 배울 게 많습니다.” 또 다시 경영으로 얘기가 돌아오고 말았다.
이렇게 된 김에 아예 경영 얘기를 꺼냈다. “직접 결제를 안하신다면서요.” “6년동안 한건도 없었습니다.” “설마 진짜 결제를 안하는 건 아니시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해요.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직원들 보면 어떤 생각 드십니까.” “뿌듯하고 가슴 벅차죠.” “같이 등산하면 더 가까워 지겠습니다.” “내려가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젊은 친구들 얘기 듣는 게 너무나 즐겁습니다.” 어느새 사람 얘기로 되돌아왔다.
#뒤풀이
산을 내려와 막걸리집에 자리를 잡았다. 8시에 시작한 산행이 11시 반에 끝났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남 사장 자리 앞에는 큰 동이(질 그릇)가 하나 놓였다. 2년 전부터 등산 때마다 들고 다니는 동이다. 예전에는 막걸리도 등에 메고 다녔단다. 이내 막걸리를 한 동이에 가득 채운 뒤 6명이 한 조가 돼 함께 비우는 ‘동이주 돌리기’가 시작됐다. “내년엔 700만 달성 문제 없습니다. 파이팅!!” 한 마디씩 외치며 동이주를 비워간다. 등반의 피로는 간데 없고 당장이라도 700만, 800만을 돌파할 것 같은 싱싱한 열정이 날생선 같이 튀어올랐다. 동이를 기울인 한 직원이 입가로 막걸리를 주루륵 쏟았다. 남 사장이 웃으며 소리친다. “어어, OOO부장!! 술 흘리는 건 휴대폰 가개통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막걸리 보충 좀 해야겠어!!”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
<남용 사장의 겨울 산행>
남용 LG텔레콤 사장의 등산경영은 2002년 겨울부터 시작됐다. 등산객의 발길이 잦은 산에서의 통화품질을 직접 점검하고 홍보하기 위해서 였다. 지방본부를 돌 때면 지방의 명산을 순례한다. 덕분에 지방의 명산을 두루 순례했다. 남 사장은 태백산을 가장 마음에 와닿는 산으로 꼽았다. 태백산은 올초 천제단에 올라 가입자 800만 기원제를 올린 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