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길드워

“XXX길드에서 길드전 제의가 왔으니 참여할 분 모이세요∼” 길드마스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토너먼트 랭킹 1위에 오른 우리 길드(War Machine)에는 간혹 이렇게 도전을 해오는 길드가 적지 않다. 몸이 근질근질 하던 터라 바로 길드홀로 날라갔다. 길드홀에는 워리어인 길마를 비롯해 몽크 1명이 있었다.

엘리멘탈리스트인 나를 포함하면 총 3명. 5명이 더 필요했다. 사실 길드전에 나설 파티원 8명이 다 모이는 시간은 좀 지루했다. 늦으면 30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우리는 길드전에 참여할 길원이 하나 둘씩 모이는 동안 어떤 직업으로 파티를 구성하는 게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동안 수집한 아이템을 교환하기도 했다.

주로 잡담이 많지만 가끔은 상대방 길드의 구성에 대한 분석과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요즘 그 길드가 000를 새로 영입했어요. 그 사람 전에 △△△길드에 있던 궁순데, 콘트롤 좋아요. 조심해야 겠어요.” 우리는 그렇게 파티원이 모이기를 기다리며 길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20여분이 지나자 파티원 구성이 끝났다. 엘리멘탈리스트인 나를 포함, 워리어 3명과 몽크 2명, 레인저 1명, 네크로멘서 1명 이었다. 사실 길드전에는 워리어 3명과 몽크 1명만 있으면 나머지 조합은 어떻게 돼도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엘리멘탈리스트와 레인저 및 네크로멘서 등 다양한 직업이 모두 모였다. 느낌이 좋았다.

우리는 전과 마찬가지로 일단 워리어들이 상대 길드 법사와 힐러를 집중 공격해서 휘저은 다음에 캐스터 계열을 줄여 놓는 전략을 쓰기로 했다. 힐러인 몽크가 첫 타겟이다. 그 다음이 각종 디버프 마법과 캐스팅 방해 마법을 쓰는 메스머나 엘리멘탈리스트다. 반대로 나를 포함한 우리편 캐스터들은 그 동안 살아남아야 한다. 뭐 난 살아남는 데는 도가 텃으니 할만하다. 오죽하면 내가 몽크한테 “힐좀 주지 그랬냐”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아 형은 알아서 잘 살자노∼”니 말이다. ㅎㅎ

이 전략의 관건은 우리편 워리어가 적진에 뛰어들어 얼마나 휘저으며 상대방 캐스터를 잡아주느냐와 우리편 캐스터들이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느냐다. 일단 이 작전이 성공하면 우리는 대략 8대 6 정도의 상황에서 상대를 밀어붙일 수 있다. 운좋게 상대방 힐러라도 잡게 되면 상대방 워리어도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만 된다면 승리는 우리 것이다.내가 맡은 역할은 일단 우리편 워리어가 상대방 힐러나 법사를 잡을 때까지 살아 남는 것이다. 그 다음엔 강력한 마법으로 지원 사격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스킬 조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평소에 주로 쓰는 얼음못, 화산분화, 지진, 충격의여파, 흑요석 광채, 대지의갑옷, 냉기소환, 치유의미풍 등으로 스킬창을 채웠다.

범위데미지와 함께 몇초간 이동속도를 느려지게 만드는 얼음못을 비롯해 5초동안 1초마다 꾸준히 데미지를 입히고 마지막엔 상대를 실명시키는 화산분화 및 범위 데미지와 함께 상대를 넘어뜨리는 지진, 이에 이은 콤보로 때려 넘어진 상대에게 추가 데미지를 입히는 충격의여파, 방어를 무시하고 데미지를 가하는 흑요석 광채, 60초 동안 냉기 데미지가 추가되는 냉기 소환 등은 모두 강력한 공격용 마법이다. 특히 지진은 상대방을 무더기로 넘어뜨리기 좋아 가장 애용하는 스킬이다. 이들 모두 엘리멘탈리스트의 무서움을 알려주기에는 충분한 스킬들이다.

대지의 갑옷과 치유의 미풍은 초반에 살아남기 위한 스킬로 장착했다. 치유의 미풍은 10초 동안 체력회복력을 상승시켜주고 대지의 갑옷은 30초 동안 방어를 워리어 수준으로 높여준다. 쫒아오는 상대에게 얼음못을 날려 이동속도를 느리게 한 다음 치유의 미풍을 적절하게 써주면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나머지는 스킬을 어떻게 연계해서 사용해야 하느냐는 콘트롤의 문제다. 한명을 상대할 때는 얼음못을 날린 후 지진을 일으키고 흑요석 광채를 콤보로 넣어주는 것이 좋다. 또 상대방이 많이 모여있으면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서 지진과 충격의 여파 콤보를 써주면 워리어는 피가 3분의 1정도 닳고, 법사계열이라먼 절반정도 빠지기 때문에 가장 애용하는 조합이기도 하다.드디어 길드전이 시작됐다. 길드전은 공성전 방식으로 진행된다. 승리요건은 상대방 길드의 성안에 있는 길드히어로를 죽이는 것. 이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 길드홀과 상대 길드홀의 중앙에 위치한 망루를 점령하는 것이 중요하다.

망루에 깃발을 꽂으면 2분마다 사기가 올라가는 점을 적극 활용하기 위함이다. 돌격 명령이 떨어지자 우리는 망루를 향해 달려 나갔다. 깃발을 담당한 워리어를 중심으로 망루 앞에서 상대 길드와 대치, 눈치를 살폈다. 우리 길드의 전략은 간단하다. 상대가 깃발을 꼽으면 밀쳐내고 우리 깃발을 꼽는 것이다. 서로가 눈치만 보고 깃발을 꼽지 않으면 그냥 전투에 돌입한다.

상대 길도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먼저 꼽기만을 기다리는 눈치다. 길마가 돌격을 외치며 먼저 달려 나갔다. 상황이 순식간에 대치상황에서 전투상황으로 바뀌었다. 우리편 워리어가 공격하고 있는 상대편 몽크를 향해 냉기 소환 마법을 날렸다. 엘리멘탈리스트는 한명을 타겟으로 잡아 죽을때까지 공격해서는 안된다. 우리편이 공격하는 상대를 어시스트하는 편이 좋다.

그러는 틈에 상대편 워리어 한명이 나를 타겟을 삼은 듯 전력질주로 내게 내달려 왔다. 급하게 얼음못을 시전해 이동속도를 느리게 한 다음 거리를 다시 벌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우리편 워리어들은 상대편 법사들을 쫒느라 나를 도와줄 여력이 없어 보였다. 치유의 미풍을 시전하며 길드홀 방향으로 쭉 내달렸다.

틈틈이 반격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받는 타격이 더 크다. 그냥 우리편 경비병이 있는 길드홀로 도망치는 편이 훨씬 유리한 상황으로 이끌게 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쫒던 상대편 워리어는 포기하고 망루쪽으로 돌아갔다.상대방 워리어를 따돌리고 다시 망루쪽으로 돌아가자 상대편 몽크와 우리편 몽크가 모두 전사한 상황에서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치열한 접전이었다. 토너먼트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 길드에 도전해올 정도의 길드라 그런지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우리 길드가 약간의 우세를 점하고 있어야 했는데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우리는 몽크가 2명인데 반해 상대 길드는 1명이라 여분이 없다는 것. 역시 힐러의 지원을 받는 우리 길드가 약간 앞섰다. 곧바로 가장 피가 적어 보이는 상대방 워리어를 향해 얼음못과 지진을 시전했다.

그 때 누군가 “저기 000 한대만 때려줘. 피 거의 바닦이다”라며 지원을 요청했다. 도망가고 있는 상대편 엘리멘탈리스트에게 대인공격 최강의 데미지를 자랑하는 흑요석 광채를 날렸다. 역시 효과가 좋았다. 이렇게 전투를 벌이는 사이 죽었던 양쪽 진영의 몽크가 부활해서 달려왔다. 하지만 전세는 이미 우리쪽으로 기울었다.

듬직한 우리편 워리어들이 상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 틈에 망루에는 우리편 깃발이 꼽혔다. 상황을 점검해 보니 저쪽 편에는 사상자가 속출, 사망패널티를 받는 인원이 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꺼번에 밀고 들어갔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상대편 진영에서 경비병을 하나씩 유인해서 처리하기로 했다. 길드도둑 NPC를 제외한 모든 NPC는 한번 죽으면 되살아 나지않는다. 하지만 상대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경비병만 처리하고 망루 지키기로 들어가 사기를 모으기로 했다. 우리편이 사기를 충전시키기 전에 망루를 되찾아야 겠다는 조바심에 상대편 워리어 한명이 몽크의 힐 지원을 받으며 깃발을 들고 달려 나왔다.

우리는 깃발을 꼽지 못하게 하기 위해 얼음못을 시전하고 다리를 절게 만들고, 집중 사격을 가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그는 깃발을 꼽고 나서야 쓰러졌다. 그러자 나머지 상대편 파티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여분의 깃발로 여유 있게 다시 망루를 우리 것으로 만들고 전투에 임했다. 상대방은 이미 사망패널티를 -15정도 입고 있는 상황이라 확실하게 우리에게 유리했다. 이렇게 상대방은 사망패널티가 쌓여갔고, 반대로 우리편은 사기가 올라갔다.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우리편 파티원들의 사기가 +10이 되는 순간을 기다려 총 공격을 감행했다.남아 있는 경비병을 처리하고 사망패널티가 쌓인 상대편을 제압하는 것은 시간 문제 였다. 길드 도둑을 이용해 성문을 열었다. 성문을 여는 것은 엘리멘탈리스트인 내 담당 이었다.

성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해서 무작정 길드히어로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궁수 NPC들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접근이 쉽지 않아 상대편의 사망패널티와 우리편 사기충전 효과를 믿고 마지막 일전을 벌여야 한다. 전투 패턴은 전과 마찬가지였다. 상대방 캐스터를 먼저 일점사로 처리한 후 워리어를 상대했다.

나의 얼음못과 지진, 흑요석 광채의 콤보 스킬은 역시 효과 만점이었다. 그렇게 상대편을 모두 전사 시킨 후 부활을 기다리는 동안 궁수들을 처리 했다. 상대편이 한번 더 부활하기를 기다려 처리하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패널티의 차이가 이미 극복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덕분이었다. 그 다음 유유히 길드히어로 주변의 마법사와 길드히어로를 처리한 우리편의 승리는 당연했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한번 랭킹 1위 길드의 자존심을 지키게 됐다.

길드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길드홀로 돌아온 우리는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말로 승리를 자축했다. 오늘도 한번 죽었으니 다음에는 죽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다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