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로게이머다. 게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게임에 내 젊은 날의 에너지를 쏟고 열정을 쏟아 붇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게 뒤도 안돌아 보고 게임만 파면서 살았다. 가끔 멈칫거리기도 한다. 시합에서 지거나, 내 스스로 슬럼프에 빠지거나…, 안 좋은 일이 있거나… 하면 그런 때는 뒤를 돌아보게 된다. 요즘엔 이런 생각을 한다.
“ 내 인생에서 게임을 빼면 남는 건 무엇인가? ”
그러고 보니 정말 없다. 여가 시간에도 게임하고 , 딱히 즐기는 것도 없다. 남들처럼 특별한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니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 하는 때에 나는 너무 앞만 보며 달렸다. 하지만 25살 후반에 접어든 지금은 그나마 좀 바뀐 편이다. 뭐랄까 여유가 좀 생겼다고 할까? 예전처럼 시합에 대한 조급함과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는 편이다.
스스로 여유를 찾다보면 시야도 넓어지는 법이다. 그동안 밀렸던 공부도 하고 친구들도 만난다. 여자친구를 만들어 볼까…, 생각도 하지만 그건 좀 무리인 것 같다. ^^ 연애할 만큼의 짬은 아직은 나지 않으니까.
가끔 팀원들과 조촐하게 카드게임을 하는 게 최근의 즐거움 중의 하나다. 카드 게임을 하다보면 딱 두 종류의 사람을 보게 된다. 주어진 패로 묵묵히, 때로는 과감한 배팅으로 페이스 조절을 하며 판을 만들어서 게임을 하는 사람과, 받았어야 할 패를 아쉬워하면서 그 패에 계속 미련을 두는 사람. 인생에 비유해 보면 후자로 선택되어지면 안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뜻대로는 잘 안될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살수 있으면 왜 인생이 어렵다고 하겠는가? 나도 항상 아쉬움에 빠져서 살았다. 열심히 노력해서 결승전에 올라갔더라도 지고 나서 아쉬워 하는 순간이 많았다. 비단 게임에서 뿐만이 아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후회와 아쉬움을 갖고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런 것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했는데….
게임을 하고 안하고는 자기 맘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포기하고 싶으면 GG를 치면 되고 카드게임에서 치기 싫으면 ‘다이’를 하면 되지만 인생은 딱 한번의 기회만이 주어진다. 배팅 할 기회도 한번 뿐이다.
살다보면 자기 환경과 현실 때문에 절망하고 좌절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하고 안하고의 선택권은 없다. 무조건 해야 한다. 그런데 패가 나쁘다? 그래도 해야 한다면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두고두고 멍에를 짊어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현재의 내 모습 같은 자식을 낳고 그 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아빠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단다”라는 한마디 뿐일 것이다.
<프로게이머 deresa1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