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에 논공행상이 한창이다. 저무는 2004년을 결산하고 신년 계획 수립에 분주하다.
돌이켜보면 2004년은 게임업계에 있어 격동기였다. 그 어느해 보다 대형 사건 사고가 게임업계를 강타했고, 업계 기류도 수시로 바뀌었다. 게임시장이 이륙기를 지나 조정기에 돌입하는 징후도 조금씩 포착됐다.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기업은 물론 개발방향, 수익모델, 마케팅 등 산업 전분야의 부침현상도 두드러졌다.
게임업계에서는 2004년 한햇동안의 변화가 지난 3년간의 변화와 맞먹을 정도라는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급속한 변화의 물결은 내년에도 계속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04년 산업트렌드를 되짚어보는 것은 신년을 대비하는 가장 좋은 해법이기도 하다. 2004년 급부상한 산업트렌드와 주춤했던 산업트렌드를 정리해본다.
# 수익모델 패러다임의 변화
2004년은 온라인게임의 해였다. 모바일·콘솔 등 비주류시장의 약진이 두드러졌지만 한국 게임산업의 성장동력은 여전히 온라인게임이 담당했다. 온라인게임은 처음으로 1조원대 시장을 형성하며 파죽지세의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2004년 온라인게임시장에는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몰아쳤다. 신작게임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게임의 수익모델은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양상으로 진행됐다. 그동안 MMORPG의 전형적인 수익모델로 뿌리내린 정액제 유료화가 무너지고, MMORPG에도 아이템 판매라는 부분 유료화가 대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액제 유료화는 무료 오픈베타서비스 게임이 급증하면서 올 상반기부터 성공에 대한 회의론이 급속히 퍼졌다. 특히 ‘트라비아’와 ‘씰온라인’, ‘디오온라인’ 등 기대작이 이같은 우려에도 정액제를 고집한 이후 게이머들로부터 외면 받으면서 ‘정액제=필패’가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심지어 블록버스터 MMORPG로 꼽혔던 ‘RF온라인’마저 월 이용료를 50% 가량 내리고서야 정액제 유료화에 돌입할 만큼 정액제의 벽은 높아질대로 높아졌다.
이 때문에 ‘프리프’ 등 정액 유료화를 단행하려던 게임들이 잇따라 부분 유료화로 선회하는가 하면 ‘탄트라’ ‘디오’ 등 정액제를 단행했던 게임이 다시 부분 유료화로 돌아서는 사례도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은 내년에도 심화돼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길드워’ 등 초특급 대작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카툰렌더링 전성시대
게임 개발방향에서도 물줄기는 확 바뀌었다. ‘리니지’로 대변되는 실사풍의 그래픽이 시들해진 반면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연상케하는 카툰렌더링 기법이 유행처럼 번진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팡야’ ‘카트라이더’ ‘당신은 골프왕’ 등 캐주얼게임에서 불기시작한 카툰렌더링은 ‘씰온라인’ ‘마비노기’ ‘요구르팅’ 등 대작 MMORPG로도 옮겨오면서 빠르게 실사풍 그래픽을 대체해 나갔다. 캐릭터도 8등신보다는 5등신 급기야 4등신에 이르는 코믹한 SD(Super Demonstration)캐릭터가 게이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양상이었다.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G)을 대체해 멀티플레이 온라인게임(MOG)이 쏟아진 것도 게임 장르와 기술 트렌드의 변화를 예고했다.
MOG는 캐주얼게임뿐 아니라 ‘요구르팅’ ‘길드워’ ‘라스트카오스’ 등 대작 MMORPG에도 잇따라 도입될 예정이어서 향후 게임 개발환경과 플레이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을 변수로 꼽히고 있다.
# 비주류 장르의 대반격
전략 시뮬레이션과 롤플레잉 게임의 편식현상이 사라진 것도 주목할만하다. ‘팡야’ ‘카트라이더’ ‘당신은 골프왕’ 등 스포츠 캐주얼 게임의 성공은 그동안 롤플레잉 게임이 주류를 이뤄온 온라인게임 시장의 외연을 한층 넓혀 놓았다. 또 마니아들만 즐기는 게임으로 인식돼온 1인칭 슈팅(FPS)게임이 바람을 일으킨 것도 예상외의 성과였다. ‘스페셜포스’의 경우 웬만한 MMORPG보다 많은 유저를 불러모으면서 FPS는 국내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FPS징크스’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반면 온라인게임시장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카드류 게임은 올 상반기 ‘맞고’를 정점으로 성장세가 한풀 꺾여 좋은 대조를 보였다.
모바일게임에서도 주류와 비주류 장르가 역전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경영시뮬레이션(타이쿤)과 카드 게임 일색이던 모바일게임은 올들어 롤플레잉, 스포츠 등 다양한 장르가 고르게 인기를 얻으면서 절대 강자가 없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이와 함께 온라인게임과 마찬가지로 모바일게임에서도 대작화 바람도 중요한 추세로 떠올랐다.
# ‘차이나드림’에서 ‘재팬드림’으로
게임업계 2004년에는 수출이 여전히 화두였다. 불과 1년사이 수출계약금 규모가 최대 10배나 치솟으면서 경쟁이 치열한 내수보다 해외시장 개척에 눈을 돌리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황금시장으로 여겨지던 중국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수출이 ‘핑크빛’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쏟아졌다. 중국의 경우 정부차원의 온라인게임 심의가 대폭 강화된데다 잦은 로열티 분쟁으로 올들어 불확실성이 고조됐다. 더구나 샨다가 중국 최고 히트작 ‘미르의 전설2’를 개발한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하면서 산업의 헤게모니마저 넘어가는게 아니냐 하는 우려감까지 낳았다.
반면 그동안 가능성이 희박해보이던 일본시장에서 국산 온라인게임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 ‘차이나드림’을 대신해 ‘재팬드림’이 급부상하는 양상이 전개됐다. 한게임재팬의 경우 올 한햇동안 일본에서 300억원에 달하는 외화를 벌어들여 자스닥 상장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교통수단 마케팅 채널로 급부상
그 어느때보다 마케팅 경쟁이 치열했던 2004년에는 새로운 마케팅 시도도 잇따랐다. 경쟁작이 쏟아지면서 게임을 잘 만드는 것 못지 않게 게임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버스와 지하철 등 교통수단을 이용한 광고·마케팅은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버스나,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지하철은 ‘움직이는 광고판’에 비유되기도 했다. 한 때 서울시내 버스와 지하철의 광고의 절반이 게임 광고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교통광고는 초강세를 보였다.
반면 매스미디어를 통한 마케팅은 희비가 엇갈렸다. 게임주간지, 게임웹진 등 전문지의 경우 독자층이 넓어지며 가장 영향력있는 마케팅 채널로 급부상한 반면 신문, 방송 등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의 퇴조는 두드러졌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 우종식 원장은 “2004년 게임업계는 다양한 게임개발과 시장개척에 그 어느때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내년에는 처음으로 국제게임전시회가 열리는 등 글로벌 비즈니스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지영기자 장지영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