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에는 전투의 역사와 해당 국가의 문화가 보입니다. 절대 만만히 볼 수 있는 분야가 아니죠. 인간의 역사가 핏빛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만 잘 알고 있다면 말입니다.”
과거와 현재에 존재했던 군복을 300여 벌이나 소장하고 있는 군복 콜렉터 이준규(35세)씨의 말이다.
그의 이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문이 트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군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프라모델로 제작된 탱크와 전차, 항공모함 등을 조립하면서 ‘취미’가 시작됐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점점 강도가 더해져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해 일본어로 된 군사 잡지와 서적을 탐독하며 전문 자료를 모았다. 그러다 ‘취미’는 밀리터리에 대한 모든 것에서 조금씩 군복으로 집중되기에 이르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다른 밀리터리 용품이 많았지만 왠지 끌려서”가 그 이유였다.
군대를 갔다오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의 취미 생활은 꾸준히 이어졌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PC 통신을 타고 전국에 전파됐으며 국내 유일의 밀리터리 잡지 플래툰에서 입사 권유까지 받았다.
당시 플래툰 편집장은 국내 최고의 밀리터리 전문가 이대영씨였고 원래부터 친분이 있었던 마니아 사이였기 때문에 조금의 거리낌 없이 잡지사에 들어가 본격적인 군복 콜렉터로 활동을 시작해 근 9년째 명성을 날리고 있다.<사진설명>
①실미도 당시의 특수부대원 진품 ②실미도 특수부대 베레모. 684 숫자가 거꾸로 박힌 것이 특징 ③한국 전쟁 당시 미군 장교가 입었던 군복 ④‘위 워 솔저’에서 나왔던 군복과 완전히 같은 것
그의 수집품에는 실미도 특수부대가 당시 입었던 특수부대 군복과 베레모가 있으며 한국 전쟁에서 미군이 입었던 정복, 2차 세계대전 독일 전차병의 전투복, 베트남전 당시 범용으로 보급됐던 타이거 스트라이프, 영화 ‘위 워 솔저’에 등장하는 군인들이 입었던 것과 완전히 같은 군복 등 일일이 설명하자면 책 한권이 모자랄 정도로 많다.
또 군복에 따라 기장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사병과 장교, 희귀성, 보존 상태, 실존 인물의 유무 등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치가 매겨져 있다.
“군복의 가치는 몇 천원부터 억대까지 다양합니다. 특히 일본 마니아들이 고가의 군복을 소지하고 있는데 전세계에서 두벌 밖에 없는 군복의 하나를 일본인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국 전쟁에서 우리 나라 장교가 입었던 군복인데 말이죠.”
이 씨는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의 군복도 해외에서 구입한 것이라며 돈만 많으면 국가 문화재급의 국산 군복을 사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과거 대한민국 군인들의 정복은 가치가 떨어지지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군복을 단순히 모으기만 해서는 별 의미가 없다. 이 씨는 군복에서 시대의 아픔과 해당 군대의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볼 때마다 흥미가 생긴다고 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이 종반으로 치닫을 때 영국군의 영향을 받아 미군에 지급된 짧은 윗도리가 대표적이다. 보통 군복은 윗도리가 길어 허리를 완전히 덮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영국만 예외로 허리 바로 위까지 오는 군복을 디자인해 입었는데 여기에 동맹국 미군이 영향을 받아 짧은 윗도리가 한정 생산됐다는 것.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자세히 보면 이 정복을 입고 있는 장교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런 문화의 흐름들이 군복에서 보이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평생의 취미로도 조금의 모자람이 없죠.”
그런데 군복을 모으기가 과연 쉬울까? 남대문 시장에서 파는 것이야 뻔하고, 현대 군인들의 군복은 어떻게 구할 수 있어도 과거의 옷들은 어떻게 구할까. 그는 군복을 수집하기 위해 세계를 헤맨다고 털어놨다.
오랜 기간 동안 군복만 모으고 세계 곳곳에서 치뤄지는 밀리터리 행사에 참가하다보니 국내외 콜렉터끼리 저절로 연대가 생겼고 인터넷으로 상시 연결돼 있어 돈만 있으면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한편 이씨는 군복 뿐 아니라 밀리터리 전반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종 군사 고증에 참여한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월드 워 2’의 고증을 담당했고 온라인 게임 ‘파병’의 포스터 검증에 투입됐다.
또 많은 영화사들과 군사 고증과 군복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으며 그들이 구하지 못하는 옷들은 ‘대여’까지 해준다. 게다가 밀리터리 게임에도 조예가 깊어 ‘콜 오브 듀티’나 ‘메달 오브 아너’, ‘베트남’, ‘파병’, ‘히트 프로젝트’, ‘C&C: 제너럴’, ‘메탈 기어 솔리드’ 등 모르는 것이 없다. 당연히 전쟁 영화나 드라마도 빠짐없이 자료를 수집하고 감상한다.
한달 수입의 절반을 취미 생활을 위해 소비한다는 이 씨는 자신의 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시회를 열어도 남을 만큼의 군복이 저에게 있습니다. 예전에 국방부에서 실시했던 군복 전시회에 제가 가진 것들을 대여해줬는데 저도 제 이름을 걸고 상설 갤러리를 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작은 목표입니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