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들에게 2004년 한해를 대표하는 게임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 취향에 따라 다양한 답이 있겠지만 연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게임은 ‘카트라이더’와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대박을 터뜨린 게임은 ‘카드라이더’가 유일할 것이다.
불광동에 사는 주부 S씨. 생후 10개월된 딸을 둔 초보 엄마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 일과를 보내지만 잠시라도 짬이 날 때면 PC앞에 앉는다. 온라인 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의 매력에 빠진 후부터는 바쁜 와중에도 자꾸 PC로 눈이 간다.
그래서 남편의 퇴근시간은 S씨가 해방되는 순간. 이때부터 확실히 자리를 깔고 ‘카트’의 세계로 빠져든다. 남편이 힘든 야근을 마치고 돌어와도 그 시간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 딸의 잠을 재우는 것도 당연히 아빠의 몫. 이 집에서는 S씨가 카트 세계에 빠져 있는 동안 갓난아이인 딸이 아빠의 등에 업혀 잠드는 진풍경이 시작된 게 벌써 3개월째다.
# 카트 증후군
딸의 양육시간 마저 쪼개가며 ‘카트’를 즐기는 S씨는 ‘카트’에 열광하는 600만명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직장인 Y씨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퇴근 후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갈 때면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두 카트로 여겨질 정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주변을 살피는가 하면 누가 추월할라치면 걸음을 재촉해 앞으로 달려나간다.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달려 나오려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사람의 앞을 가로막기까지 한다. ‘카트라이더’의 세계에 빠져 있다보니 현실세계까지 카트의 레이싱장으로 보이는 일종의 증후군에 빠진 것. 당연히 집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도 PC를 켜고 ‘카트라이더’에 접속하는 일이란다.
이 정도되면 ‘카트라이더’ 신드롬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써 회원 650만명을 넘어섰고 동시접속자도 15만명에 육박한다. 국산 온라인 게임의 대명사 ‘리니지’를 따돌린지 이미 오래됐고 최근에는 ‘스타크래프트’의 아성까지 위협하고 있다. 게임트릭스의 PC방 이용량 조사에서는 최근 하루 이용량이 ‘스타크래프트’를 앞지르기도 했다. 철옹성같던 ‘스타크래프트’의 자리를 위협했다는 것만으로 ‘카트라이더’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부 S씨는 “‘카트’는 캐릭터의 외양부터 편암함을 주는 데다 끊임없는 경쟁 요소가 몰입감을 주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에 제격”이라며 “퇴근 후 남편의 피곤한 모습을 볼 때는 게임하는 것이 미안할 때도 있지만 낮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나면 부부애가 더 돈독해진다”며 ‘카트’가 만든 가정 행복을 강조했다.
# 아이들과 대화의 문 ‘카트’로 열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들 두명을 둔 40대 직장인 아빠 L씨는 그동안 게임 때문에 아이들과의 신경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퇴근후 아빠가 집에 들어와도 게임에 빠져 본척만척하는 자식들이 한심해 언성을 높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휴일에는 컴퓨터 앞에 앉으려는 아이들과 전쟁까지 벌여야 했다. 하지만 L씨가 ‘카트’를 즐기는 아이들을 보다 우연히 게임을 해보면서 집안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L씨가 건전하면서 재미있는 ‘카트’의 매력에 빠지면서 아이들과의 대화가 시작됐기 때문. 서로 맵 공략을 가르쳐줄 정도로 가까워지면서 이제는 PC를 차지하려고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과의 대화가 풀리면서 중학생 형은 어느샌가 동생의 PC 사용시간까지 관리할 정도로 아빠의 든든한 조교가 됐다. 오래동안 닫혀있던 부자지간의 대화의 문을 ‘카트’가 열어주면서 서로 타협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낸 것.
# 재미있다면 모든 게 용서된다
‘카트라이더’가 출시될 때 이를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대작으로 바라보기 보단 외산 게임과 너무 흡사해 도리어 표절 논쟁을 불러오는 불명예까지 썼다. 닌텐도의 ‘마리오카트’와 여러모로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도 금새 수그러들었다. 왜? “재미있으니까” 이 한마디로 답을 내릴 수 있다. 콘솔게임기에서 혼자 즐기던 ‘마리오카트’와 달리 ‘카트’는 온라인에서 타인과 경쟁을 벌인다. 이 한가지 만으로도 게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달랐다. 여기에 바나나, 물폭탄, 유도탄 등 각종 아이템을 써가며 상대를 교란하는 스피드 경쟁을 할 때는 도저히 ‘마리오카트’가 떠오를 여지가 없었다. ‘카트’의 재미에 게이머들이 완전히 매료된 것. “예쁜 여자는 모든 게 용서된다”는 시챗말과 같이 ‘카트’는 재미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용서받았다.
#단순한 것이 좋다
삼성동 오피스텔 3층의 한 PC방. 저녁에 일하는 직업여성(?)들이 많이 사는 이 곳에서는 오후 3∼4시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잠에서 막 깨어난 일군의 여성들이 PC방으로 몰려와 ‘카트라이더’를 즐기기 때문. 실력도 수준급이라 L3 레벨급의 고난이도 맵에서도 곧잘 1등을 차지한다. 이 PC방은 여성 손님 덕택에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다. 다른 지역 PC방이라면 학생들의 수업이 끝나기 전까진 파리가 날리지만 이곳은 여성 손님과 이들을 보러오는 남성 손님들 때문에 낮시간에도 자리가 꽉 들어차기 때문.
‘카트라이더’는 이처럼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여성들 조차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기를 얻고 있다. 그동안 레이싱 장르가 마니아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것. 키보드의 방향키 버튼 4개와 좌측의 쉬프트, 컨트롤키 2개 등 총 6개의 버튼 만으로 게임을 완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템전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그나마도 컨트롤키 조차 사용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귀여운 캐릭터인 다오, 배찌 등의 ‘비앤비’ 캐릭터를 3D로 앙증맞게 재탄생시킨 것도 인기의 요인. 물풍선이나 유도탄 등과 같은 다양한 아이템을 활용한 ‘아이템전’의 묘미는 여성 유저들과 초보자들을 ‘카트팬’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 드리프트의 심오함
‘카트라이더’의 첫번째 매력은 단순함이지만 그 속에서는 갖가지 심오한 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이 ‘카트’가 열풍을 불러오는 진정한 요인이다.
‘카트라이더’ 최고수들의 드리프트 기술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쉬프트키와 방향키를 누르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드리프트 기술은 초보와 고수를 구분하는 척도. 코너에서 최소한의 감속 효과로 드리프트하는 기술을 익히기까진 수십시간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
‘해브’란 아이디를 사용하는 카트 고수 성두현(22)씨는 “다른 레이싱 게임도 많이 해봤지만 ‘카트’는 복잡한 드리프트 기술을 매우 간단한 조작으로 구현하서도 그 묘미는 충분히 살렸다”며 “시뮬레이션 성격의 기존 레이싱에서 맛볼 수 없는 타인과의 경쟁 요소가 있다는 것도 ‘카트’의 묘미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템전과 레이싱전으로 나뉘는 대결 모드가 레이싱 장르에 걸맞게 숨막히는 경쟁을 유발하도록 설계됐다는 점도 이용자들을 끌어 모으는 요소다. 순간 부스터로 승부를 가르는 스피드전 뿐만 아니라 아이템 공격으로 순식간에 순위가 뒤바뀌는 아이템전까지 모두 피말리는 승부의 연속이다. 더구나 MMORPG와 달리 짧은 시간에 승부를 판가름 낼 수 있다는 점도 ‘카트’의 매력이다.
이같은 승부욕을 자극한 덕분에 지난 9월 열린 ‘카트라이더 학교대항전’에는 초중고대학 등 전국 모든 학교의 95%에 해당하는 약 1만2000개의 학교, 총 100만명이 출전하는 진풍경까지 연출됐다.
커뮤니티미디어 디스이즈게임게임을 운영하는 임상훈 사장은 “‘카트라이더’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낮은 데다 개인전, 팀전, 스피드전, 아이템전 등으로 재미요소를 다양화시킨 것이 장점”이라며 “특히 실력이 떨어져도 이길 수 있고 친구들과 함께 해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팀전은 ‘카트라이더’가 짧은 시간에 인기를 높일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김태훈기자@전자신문>
<카트라이더 인기비결 7>
1.배우기가 쉽다
2.캐릭터가 귀엽다
3.맵이 다양하다
4.손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4.마스터하기 어려워 중독성을 갖는다
5.실력이 없어도 이길 수 있다
6.여자가 많다
7.너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