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SW업체 장기 불황탓에 "굿바이 코리아"

세계적인 기업 간(B2B) 전자상거래 솔루션업체인 아리바는 지난달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하고 아리바코리아 조직을 해체했다. 아리바코리아는 지난 2000년 초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의 B2B 솔루션 프로젝트를 과점하며 이름을 날렸지만, 급격한 경기침체 여파와 기업들의 소프트웨어(SW) 투자 감소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결국 폐쇄됐다. 한때 20여명이 넘던 지사 규모는 철수 당시 4∼5명에 불과한 사무소 형태로 줄어들었고 현재는 완전 철수했다.

 아리바코리아 지사장을 맡았던 이형규 전 사장은 “아리바코리아라는 법인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완전히 철수했다”며 “국내 시장이 괜찮아지면 다시 진출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재진입 여부가 매우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아리바코리아는 외국의 경우와 달리, 국내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곤 B2B 솔루션 구축에 매우 소극적인 데다 유지보수 계약마저도 하지 못해 퇴로로 몰리게 됐다.

 세계적인 SW업체들이 장기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국내 시장에서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일부 국내 SW업체의 부도와 맞물리며 국내 SW시장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중국·일본의 상황과는 극명히 대조된다. 다국적 SW업체들은 SW의 초대형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또한 지난 10년간 침묵을 깨고 정보기술(IT)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일본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동안 국내 시장이 다국적 SW업체들의 테스트베드로서 일정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한국지사 철수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세계 가상사설망(VPN) 시장의 강자인 소닉월은 올해 상반기 한국지사를 전격 철수시켰다. 국내 지사인 소닉월코리아를 통해 저가 제품을 앞세워 소호와 무선 VPN 시장을 집중 공략했으나, 관련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퓨쳐시스템과 같은 국내 업체들의 견제도 심했지만, 수요가 없는 시장에서 더는 장사를 할 수 없었다. 소닉월은 국내 총판인 넷소닉에 영업을 전담시키고 영업전략도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위주로 전환했다.

 국내 보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계 기업들이 시장침체에 따른 가격경쟁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업을 철수하거나 규모를 줄이고 있다”며 “소닉월은 국내 기업의 맞춤형 서비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해 유행처럼 번졌던 SW업계의 인수합병(M&A)도 국내 지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유럽 최대의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솔루션업체인 MIS에이지의 한국지사인 MIS아시아는 본사가 M&A되면서 설자리를 잃었다. 합병사인 영국의 시스템스유니온그룹이 영업 부진을 이유로 국내 시장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전 MIS아시아 관계자는“MIS에이지는 유럽 최대의 BI업체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로컬화 대응에 늦어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인수자인 시스템스유니온그룹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한국 지사를 철수했다”고 말했다.

 국내 모 외국계 SW업체 사장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기업의 전산 관련 결정권자들의 수준이 높아져 세계 최고 기업이라는 간판 하나만으로 SW를 파는 시대는 끝났다”며 “SW업체들은 투자대비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익종·김인순기자@전자신문, ijkim·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