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때’. 한때 디지털 경제의 원동력으로 칭송받았던 벤처가 ‘이제는 입에 올리기도 싫은’ 지긋지긋한 용어가 되어가고 있을 즈음 선물 보따리가 펼쳐졌다. 정부가 ‘그래도 경제동력은 벤처’라며 지난해 말 풀어놓은 신벤처정책은 실의와 좌절에 빠진 벤처기업가들에게 다시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묘약이 된 것이다. 하지만 시작은 이제부터다. 벤처부활의 원년 2005년에 벤처기업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국내 IT벤처 CEO 107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신벤처 정책에 거는 기대=정부의 신벤처정책에 벤처기업 CEO들이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신벤처정책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벤처산업이 어느 정도 활성화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전체 응답자의 81.3%에 이르는 CEO들이 ‘벤처붐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답했다. 특히 2000년 전후 벤처붐 수준을 뛰어넘거나(5.6%) 비슷한 효과가 날 것(5.6%)이라는 대답까지 포함하면 10명 중 9명이 이번 신벤처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응답은 7.5%에 그쳤다. 이번 정책을 통해 정부가 벤처를 경제회생의 동력으로 전면에 내세운 것이 벤처기업들에는 상당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벤처기업 CEO들은 어떤 지원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신벤처정책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과제를 묻는 질문에서는 ‘벤처기업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30.8%)’과 ‘벤처캐피털의 활성화를 통한 투자 확대(16.8%)’가 나란히 1, 2위로 뽑혀 역시 자금지원이 가장 절박한 벤처기업의 요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DMB/디지털방송/차세대 무선통신 등 신시장의 창출’이라는 응답도 16명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으며 ‘정부의 벤처제품 구매 확대 또는 공공 프로젝트 활성화’와 ‘대기업과의 불공정 거래관행 개선’은 각각 4, 5위를 차지했다.
자금 지원이 가장 절박한 요구이긴 하지만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벤처기업을 위한 모태펀드가 조성될 경우 벤처의 어느 단계에서 지원이 이뤄져야 하느냐는 질문에서 응답자의 57.9%가 ‘벤처기업 성장단계’에서 필요하다고 답해 자금난으로 인한 성장통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었다. ‘단계별로 고루고루’라는 응답과 ‘예비 창업 단계 혹은 초창기’라는 응답도 각각 25.2%와 15.0%로 그 뒤를 이었지만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와 함께 앞으로 신벤처정책을 통해 중점 지원해야 할 미래 첨단 산업분야에 대해서는 10명 중 4명꼴로 ‘BCN/DMB/위성통신 등 차세대 통신·방송’ 분야를 꼽아 전략 IT산업에 대한 CEO들의 시각을 드러냈다. 인터넷/게임 등 문화 콘텐츠 분야라고 응답한 CEO들도 21.6%에 달했으며 그 다음으로 ‘나노/바이오 등 기초 소재 및 부품분야(17.8%)’가 많았다. ‘그리드 컴퓨팅/인공지능/로봇 등 컴퓨터 응용분야’와 ‘운영체계/DBMS/기업용SW 등 첨단 SW분야’는 각각 9.3%로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나타냈다.
◇“벤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 달라”=벤처기업 CEO들은 구체적인 지원에 앞서 정부 부처나 주무기관이 벤처의 속성에 대해 잘 파악해주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었다. 특히 현재의 벤처지원 부처와 관련기관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불만을 나타내기도 해 앞으로 정부가 보다 많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수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신벤처정책을 시행하는 데 있어 적합한 주무부처가 어디냐는 질문에 ‘현재처럼 중기청이 담당해야 한다’는 대답은 23.4%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다른 부처를 선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산자부와 정통부가 각각 12.1%와 10.3%를 차지했으며 재경부나 과기부라고 대답한 이는 더욱 드물었다. 이에 반해 ‘벤처육성 전담기구나 위원회를 별도로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은 48.6%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벤처산업을 육성하고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전용 기구에 대한 절실한 바람을 드러낸 것이다.
원인이 뭘까. 후속질문인 주무부처의 선정기준이 무엇이냐는 물음과 연계하면 뚜렷해진다. ‘산업과 벤처에 대한 이해력’이라고 답한 CEO들이 50.5%에 달했다. 역으로 말하면 현재의 주무부처나 관련기관은 여전히 산업과 벤처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 벤처정책에 대한 가장 큰 불신이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이와 함께 벤처 CEO들은 ‘벤처정책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22.4%)’와 ‘정책 추진력(15.9%)’을 갖고 있는 주무부처를 원하고 있었다.
벤처기업 지원시 가장 중요한 선정기준을 묻는 질문 역시 ‘개발 기술의 미래가치’라고 응답한 사람이 40.3%로 가장 많아 첨단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두번째로 많이 응답한 ‘제품의 시장성’과 세번째 순위를 차지한 ‘R&D 능력’도 비슷한 문제의식임을 감안하면 개발한 기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IT뉴딜 등 기존 정책과의 연계성=어떤 정책이든 홀로 성공하기는 힘들다. 다른 유관정책과 긴밀하게 연계되어야만 시너지 효과가 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이 메워지기도 한다. 벤처정책은 더더욱 그렇다. 벤처기업 CEO들은 대체로 IT839 등의 기존 IT정책이 벤처업계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크게 도움이 된다(18.7%), 다소 도움이 된다(47.7%)로 응답한 CEO들이 3분의 2에 달했으며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 응답자는 20.6%에 그쳤다.
그러나 기존 정책과 벤처정책이 긴밀하게 연계되어야만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형 뉴딜 정책과 신벤처정책의 연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57%에 달하는 CEO들이 ‘두 정책을 별도로 추진하되 긴밀히 연계시켜야 한다’고 대답했다. 아예 ‘한국형 뉴딜정책의 전면에 신벤처를 내세워야 한다’는 응답도 29.9%에 달했으며 ‘별개로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13.1%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IT뉴딜이 벤처산업 활성화로 연계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벤처 활성화를 위한 행정지원과 벤처 생태계 재구축 등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10명 중 6명으로 가장 많았다. 벤처 개발 제품에 대한 구매지원이나 R&D지원도 2, 3위로 중요하게 거론됐지만 절박성에서는 다소 뒤처졌다. 즉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벤처기업이 자생력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산업기반을 구축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와 함께 IT뉴딜을 위해 투입될 예정인 1조원의 자금은 가급적 빨리 지원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당장 올해 1분기부터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53.3%로 가장 많았으며 2분기라고 응답한 사람도 29%에 달해 10명 중 8명 이상이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밖에 2006년 폐지되는 벤처확인제도의 존치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 유사한 형태의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70%로 절대 비중을 차지해 제도 폐지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행 그대로 존치시켜야 한다는 대답도 17.8%에 달했으나 완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10.3%로 나타나 이 제도에 대한 평가 자체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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