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약속과 신뢰
2000년 9월 사업자금 5000만 원으로 서울 삼성동에 있는 지인의 사무실에 더부살이로 시작했다.
항상 그렇듯이 새로운 시작은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하지만 함께 의논하고 생각을 같이 할 정진섭 박사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내 마음은 든든했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설레었다.
우리는 회사 이름을 짓기 위해 책상 위에 알파벳 A에서 Z까지 펼쳐놓았다. 국내와 해외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기 위해서는 ‘.com’과 ‘co.kr’ 도메인이 꼭 동시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가능했던 알파벳을 찾아 ‘이노베이션’의 ‘이노’와 ‘와이어리스’를 결합한 이노와이어리스를 탄생시켰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후배들도 불렀다. 나와 정진섭 박사, 소프트엔지니어 한 명, 시스템 엔지니어 한 명, 살림을 꾸려 나갈 관리 한 명, 이렇게 5명이 긴 장정에 나서게 되었다.
돈이 없어 개발이 힘들었던 사업 초기, 일본의 코웨이 사장 히로타가 찾아와 “사업에 성공하라”며 3만 달러를 주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였다. 히로타는 네오포인트를 설립했을 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인데 나의 창업소식을 듣고 찾아와 기꺼이 이노와이어리스의 정신적, 경제적인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언젠가 밤 12시까지 회의를 하고 히로타 사장을 호텔에 데려다 주는데 “한국업체와 그렇게 많이 거래했지만 술도 안 사주는 회사는 처음 본다”고 했던 그의 말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일화다. 하지만 당시 우리에겐 고마운 사람에게 술을 접대 할 수 있는 여윳돈이 없었다.
우리는 히로타 사장이 주고 간 자금으로 데모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200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CTI쇼의 참가업체 부스를 찾아 다니며 홍보를 했다. 뜻밖에도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미국의 CWT사와 미국 판매 계약을 하게 되었다.
또한, 히로타 사장은 이노와이어리스의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으로 시제품을 일본으로 가져가 이동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영업을 했다. 물론 그 당시 해외 경쟁 제품에 비해 우리 제품은 미흡한 기능이 많았지만 우리는 3개월 내에 미흡한 모든 기능을 구현하여 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 약속에 힘을 얻은 히로타 사장은 일본 CDMA 사업자인 KDDI에게 1억 원의 주문서를 받아왔다.
주문서를 받았지만 개발은 진행 중이었고 인수시험에 통과를 해야만 KDDI사로부터 돈을 받을 수가 있는 상황. 10명도 안 되는 전 직원이 온 힘을 다해 개발에 주력했지만 우리의 직원 규모로는 도저히 약속했던 납품 시기를 맞출 수가 없었다.
그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곳이 MVP 창투사였다. 그들도 설립된 지 얼마 안 되는 창투사였지만 우리의 기술력을 믿고 우리에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8억 원을 투자해 주었다. 그 돈으로 우리는 인력을 보완하였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국 납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히로타 사장은 최선을 다한 개발이었다며, 자신의 지분을 교세라 그룹에 팔아 우리에게 1억을 주었다. 그 덕분에 제품 개발이 무사히 완료되었고 납품할 수 있었다. 이것이 이노와이어리스의 첫 수출이다.
우리와 히로타 사장 모두 이노와이어리스의 제품과 기술력에 자신이 있었고 서로 신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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