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아성을 지키기 힘들다는 속설을 반영하듯 수많은 세계 IT업체들이 업체들이 명멸하면서 CEO들이 뉴스 메이커로 떠올랐다.
◇인수 및 합병(M&A)으로 뜬 사람들=류촨즈 레노보(렌샹) 회장은 PC의 원조인 IBM의 PC사업부문을 인수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변방 PC업체 사장에서 세계 PC업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CEO로 우뚝 섰다. 10년전 단돈 2만5000달러에 레노보를 세운 그는 총매출 120억달러의 세계 3대 PC 제조업체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18개월이나 끌어왔던 피플소프트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도 빼놓을 수 없는 올해의 인물이다. 103억달러에 피플소프트를 전격 인수하면서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토리지 시장 강자인 베리타스를 135억달러에 인수한 시만텍의 존 톰슨 CEO도 화제에 올랐다. 지난 99년 시만텍 CEO이자 회장에 취임한 그는 이로써 세계 5위 소프트웨어 업체를 이끄는 사령탑으로 업계의 조명을 받았다.
넥스텔커뮤니케이션 인수를 성사시키며 미국 3위의 거대통신 사업자의 CEO로 올라선 게리포시 스프린트 CEO와 지난 10월말 AT&T 와이어리스를 410억달러에 전격 인수하며 미국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 대표로 올라선 스탠 시그만 싱귤러와이어리스 CEO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비즈니스 신기원을 연 사람들=천부적인 사업감각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CEO들도 눈길을 끌었다.
1980년대 더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IBM PC 및 그 호환기종에 컴퓨터 시장을 내주었던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음악 재생기 아이팟과 디지털 음악 서비스 사이트인 아이튠스를 대성공시키며 올해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특히 아이팟은 벤처투자, 주변장치, 부품협력업체와 온라인 쇼핑몰 등에 일대 대박을 안겨줌으로써 잡스의 천부적인 사업가, 흥행사적인 기질을 보여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창업자 폴 앨런은 민간 우주비행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지난 10월 자신이 투자한 우주 비행선 ‘스페이스십원’이 민간 우주 비행선 콘테스트 ‘앤서리 X 프라이즈 컵’에서 수상하면서 민간 우주선 시대 개척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98년 창업, 후발업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올해 구글을 성공적으로 나스닥에 상장한 세그레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더치 옥션 주식경매란 독특한 공모방법과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 젊은 백만장자라는 수많은 화제로 언론지상을 장식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겸 CEO도 소프트뱅크 호크스 프로야구단 인수와 유선전화사업진출, 휴대폰 사업진출 등으로 뉴스메이커로 부상했다. 또 공룡기업 NTT의 자회사인 NTT도코모의 나카무라 마사오 사장도 선임 과정에서 도코모가 밀었던 쓰다 시로 부사장을 제치고 도코모호의 선장으로 취임해 화제를 모았다.
◇빛바랜 인물들=올해 명성이 퇴락하거나 퇴진한 경영자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에게 2004년은 이미지를 완전히 구긴 한해였다. 일본 디지털 경기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소니의 경영이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
회계부정 혐의를 받아온 산제이 쿠마 컴퓨터어소시에이츠인터내셔널(CA)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올 4월 끝내 낙마했다. 스리랑카 출신으로 25살 때 CA에 입사, 최고경영자까지 오른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자 탁월한 경영수완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미연방 당국이 쿠마가 회계 부정과 관련돼 있다고 확신하면서 CEO직을 내놔야 했다.
인텔의 CEO를 맡아온 크레이그 배럿도 잇따른 신제품 출시연기 발표와 기술적인 결함, 삼성전자와 AMD, TI 등 경쟁사들의 추격이 심해지면서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내년 5월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폴오텔리니에게 CEO 자리를 내주고 권좌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대만의 대표적인 PC업체인 에이서의 창립자 스탠 시 회장도 지난달 30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32세때인 1976년 회사를 설립, 세계적인 PC 및 주변기기 업체로 성장가도를 달려왔지만 IT산업 거품 붕괴로 위기에 봉착하면서 결국 은퇴했다. 회사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여전히 에이서의 대주주다.
월트 디즈니 회장과 최고경영자로서 18년 동안 이 회사를 이끌어왔던 아이즈너 역시 올해 가장 불안한 한해를 보냈다. 지난 1984년 CEO로 디즈니사에 들어와 부채덩어리였던 디즈니에 방향성과 비전을 불어넣고 회사 구조 개편을 단행하는 등 발군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최근들어 실적부진과 창업자들과의 끊임없는 탄핵으로 냉가슴을 앓았다. 디즈니 이사회가 후임자를 발표할 2005년 6월에 물러날 예정이다. <국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