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1부)칩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①

◆천재지변에 도전한다

반도체는 상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인간의 아이디어는 칩으로 집적되고 그 칩은 다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다. 도서관 하나를 통째로 손톱만한 크기에 담아내는 메모리,모든 제품의 혁신과 혁명을 이끌어내는 시스템반도체,그리고 아예 세트를 대신하는 시스템 온 칩(SoC)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자랑인 휴대폰과 LCD·디지털TV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메모리 성공신화를 계승하기위해,국민소득 2만불 달성을 위해 시스템반도체의 육성은 발등의 불이다. 하루 빨리 메모리강국을 넘어 시스템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전자신문은 대한민국의 명운이 시스템반도체 강국의 길을 모색해본다.

‘똑똑한 먼지가 천재지변을 막는다.’

2010년 2월 12일 오후 3시. 태평양 해저 한 가운데 스마트 더스트(Smart Dust)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하와이 섬 인근에 지진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평양에 뿌려진 수만 개의 스마트 더스트가 동시에 각 지역의 상황을 중앙센터로 전송한다. 동시에 경보 체계가 가동됐다. △지진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 △지진해일(쓰나미)이 우려되는 지역 △일상 생활이 가능한 지역 등이 빠르게 분류돼 통보된다. 각 국은 이 정보에 따라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의 사람들을 대피시킨다. 각 국별로 이번 재해를 최소화하는 대응 방안이 실시간으로 중앙센터로 모이고 공동 대책이 마련된다.

지난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인근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9.0의 강진으로 인한 지진 해일 피해가 있은 후 미 국방연구소(DARPA)는 스마트 더스트 프로젝트를 5년 만에 상용화했다. 10만 명이 넘는 사상자와 지진해일 관측 사상 최대 피해를 끼쳤던 엄청난 자연 재해를 최소화할 열쇠를 칩에서 찾은 것이다.

스마트 더스트의 정체는 바로 시스템 온 칩(SoC)다. 바다에 뿌려진 스마트 더스트는 전세계 바닷물의 환경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전송하는 칩이다. 스마트 먼지는 1㎣ 크기의 실리콘모트(silicon mote)라는 입방체 안에 완전히 자율적인 센싱(autonomous sensing)과 통신 플랫폼(communication platforms)을 갖춘 컴퓨팅 시스템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센서, 레이저, 통신용 송수신장치 등으로 구성돼 바다를 떠다니며 바다와 해저의 이상 움직임은 물론 바닷물의 온도, 염분, 각종 미생물을 측정해 곧바로 중앙시스템으로 전송한다.

전세계는 이 똑똑한 먼지가 수집하는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지진 해일과 같은 엄청난 자연재해에서 매년 문제가 되는 적조 같은 기후현상을 미리 감지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모습은 결코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지난 2000년 대 초부터 군사용으로 연구가 시작됐고, 미 국방연구소는 최근 5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스마트 더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01년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인 스마트 더스트는 쌀알 만한 크기. 이 해 3월 미 국방부는 스마트 더스트 여섯 개를 무인 비행기로 지상에 낙하했다. 이 칩은 땅에 닿자마자 주변 정보를 수집했다. 당시 스마트 더스트는 차량의 수, 속도 등을 계산해 그 결과를 센터에 전송하는 일을 해 냈다. 이후 미 국방부는 2003년에는 스마트 더스트 100개로 군대 이동상황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실험을 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많은 첨단기기들이 그렇듯이 스마트 더스트도 군사용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 똑똑한 칩, 똑똑한 먼지가 수십만 명의 생명을 보호하고 엄청난 물질적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반도체 혁명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 더스트는 지진 발생 후유증인 고층 건물의 안전도 검사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진동을 감지하는 센서가 달린 스마트 더스트를 건물의 주요 구조물에 미리 뿌려두면 지진으로 인한 진동을 바로 계산해 낼 수 있다.

스마트 더스트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칩이 인간의 천재지변에 대한 공포를 해소해 주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는 산업과 기술의 변화는 물론 인류가 두려워 하는 사회 재앙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SoC의 적용과 확산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SoC의 발전은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변화시켜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를 만들고 있다. 특히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면서 개체 간 상호 간 소통성을 증가시켰다. 정보는 21세기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스마트 더스트와 같은 보이지 않는 작은 반도체가 정보 네트워크 사회를 앞당기며 세상을 바꿔 나가고 있다.

*`Chip is all around 시대` 초읽기

인텔의 고든 무어 명예회장. 그는 매년 만들어 지는 칩의 숫자가 캘리포니아주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수 보다 많을 것이라 말했다. 무어의 계산에 따르면 지난 97년 생산된 칩의 숫자는 약 100경(京 : 조(兆)의 1만 배, 10의 16승). 이는 지구상의 개미 수와 비슷한 숫자다.

그러나 세상은 지금 무어 회장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많은 칩을 필요로 하고 있다. 스마트 더스트, 뮤 칩, 전자태그 등 눈에 보이지도 않는 칩들이 우리 일상 생활로 스며들고 있고 지구촌 곳곳에 뿌려진다. 미국의 크리스 피스터가 개발해 군사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스마트 더스트를 시작으로 일본 히타치사가 개발한 뮤 칩, 그리고 수십 종류의 전자태그 칩이 이미 짜여 진 세상 속에서 바코드와 시스템센서 등 다양한 장치를 대체하고 있다.

조만간 전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칩이 부착돼 그 사물의 특성을 표현하게 되고, 심지어는 산·들·바다·도로에 마치 모레처럼 무작위로 뿌려져 세상의 모든 변화를 탐지하게 된다.

그 쓰임새는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통분야로 칩은 바코드를 대체하면서 물건 값 계산에서부터 재고관리, 위치추적, 제품의 과거 유통 경로 추적 등을 가능케 한다. 또 옷에 부착된 칩은 세탁기에게 세탁 방법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인스턴트 식품에 붙어 있는 칩은 전자레이지에게 그 식품의 조리법을 알려준다. 도로에 뿌려진 칩은 눈이 쌓인 양을 체크해 액상염화칼슘을 자동으로 도로에 뿌려 도로 결빙을 막아 주며, 건물 주변에 뿌려진 칩은 건물의 지진 등 건물의 안전을 위협할 외부 변화를 감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온누리에 칩’ 시대를 앞당기는 다양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텔레메트릭스’는 텔레매틱스(위치측정시스템과 지리정보시스템 개념)와 텔레메트리(무선 원격검침시스템)의 합성어로, 원격지의 특정 대상물에 대한 안전도·운용상태 등을 측정·분석·제어하는 지능형시스템이다. 이르면 2009년부터 전국의 댐, 교량, 건물 등에 수천만개의 칩이 텔레메트릭스 용도로 부착되기 시작할 전망이다. 또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정부의 다양한 원격 의료·안전 사업의 기본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2012년 이후 센서 역할을 하는 칩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특히 우리 정부의 ‘IT 839` 정책 핵심 인프라 사업인 ’RFID/USN`도 센서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모든 시스템 개발 사업의 핵심이 칩으로 귀결되고 있어 앞으로 칩은 모든 산업의 ‘산소’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