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PC시장에서 ‘중견 브랜드’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대신 자본과 인지도를 앞세운 대기업과 외산 브랜드의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일부 마니아층 수요에 그쳤던 용산과 테크노마트 등의 조립 PC도 갈수록 영역을 확장해 중견 PC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올해가 사실상 ‘PC 구조조정의 원년’이라며 올해를 기점으로 중견업체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면서 브랜드와 조립시장의 양극화 추세가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견 브랜드 ‘힘들다 힘들어’=코스닥위원회는 지난 5일 ‘최종 부도’를 낸 현대멀티캡을 등록 취소한다고 밝혔다. 현대는 공공과 기업시장을 중심으로 점유율이 3% 정도로 미미했으나 내부 증자를 단행하고 외자 유치를 추진하는 등 자구책을 모색해 왔다. 그나마 ‘현대’ 브랜드의 명맥을 유지하던 멀티캡의 퇴출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중견 브랜드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현대 퇴출에 앞서 이미 지난 2003년부터 숱한 중견 PC업체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로직스·컴마을·나래앤컴퍼니 등이 청산 절차를 밝거나 파산하는 등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한때 10여개에 달했던 중견 브랜드는 대부분 자취를 감췄으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업체는 주연테크·현주컴퓨터·대우컴퓨터·세이퍼컴퓨터 정도다.
◇외산과 조립업체 ‘선전’=중견 PC업체의 쇠락에 따른 반사 이익을 직접 보고 있는 건 외산과 조립업체 진영이다. 삼성전자·LG전자·삼보컴퓨터 등 데스크톱 ‘빅3’는 점유율 면에서 아직까지 큰 변화가 없다. 1위 업체의 점유율이 다소 떨어지고 있지만 3개 회사를 합치면 60∼65%대를 고수하고 있다. 개별 업체의 점유율은 다소 변화가 있겠지만 3대 토종 브랜드 전체의 점유율 변화는 미미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반면 외산과 조립 PC업체는 지난 2003년 이후 해마다 점유율이 상승하고 있다. 데스크톱PC 분야에서는 조립업체가, 노트북PC에서는 외산 브랜드 위상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IDC 조사에 따르면 외산 업체의 점유율은 2003년부터 꾸준히 상승해 올 1분기만 해도 15%대에 머물렀으나 지난 3분기에는 19.5%를 기록했다. 외산 브랜드 중에서 도시바는 불과 2년 사이에 점유율을 12% 가까이 끌어올리며 지난 1분기 이후 노트북PC 분야 3위를 달리고 있다.
◇PC시장 양극화 현실로=PC 분야가 예상보다 빠르게 브랜드와 조립시장으로 양분된 데는 경기 불황이 한몫 했다. PC 수요층에 변화가 생기면서 중저가 PC를 구입하는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시장이 크게 위축된 데다 가격이 싼 조립 PC를 구매하는 경향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PC가 거실 등 홈시장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지만 이 같은 수요의 대부분은 대기업 브랜드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단순 인터넷 접속 용도로는 초저가 PC를 구매할 것으로 보여 중견 브랜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서동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PC산업이 대기업 중심의 브랜드 시장, 중견기업의 틈새 시장, 조립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올해를 기점으로 브랜드와 조립 시장으로 양극화되면서 중견업체의 입지는 점점 축소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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